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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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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宗之爲太子 爲太子舍人이러니 嘗獻承華箴하니 末云佞諛有類 邪巧多方이라 其萌不絶하면 其害必彰이라하고
19-3-가
高宗이 태자가 되었을 때 李義府가 太子舍人이 되었다. 일찍이 〈承華箴〉을 바치니 글의 끝부분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첨하며 영합하는 자에게는 동조자가 있고 간악하며 교묘한 짓에는 방법이 많은지라, 그 싹을 자르지 않으면 그 해가 반드시 커지네.”
義府 又諂事太子而文致若讜直者어늘 太子 表之한대 優詔賜帛하시다
또 이의부가 태자에게 아첨하여 섬겼지만 겉으로는 충성스럽고 올곧은 사람인 양 꾸미자, 태자가 〈승화잠〉을 표문과 함께 올리자 태종이 優渥한 조서를 내리고 아울러 비단을 하사하였다.
역주
역주1 19-3-가 : 《新唐書》 卷223上 〈姦臣列傳 李義府〉에 보인다.
역주2 李義府 : 614~666. 唐 高宗 때의 재상이다. 瀛州 饒陽 사람이다. 성품이 음흉하고 남을 대할 때 유순하면서도 남몰래 해쳐서 ‘웃음 속에 칼이 있다.[笑中有刀]’라고 일컬어졌다. 監察御史, 太子舍人, 中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일찍이 고종이 태자일 적에 동궁 속관이 되었는데, 고종에게 영합하여 신임을 얻었다. 고종에게 王皇后를 폐위하고 무측천을 황후로 삼을 것을 건의하여 처음으로 중서시랑 동중서문하삼품에 제수되어 재상으로 朝政에 참여하고 廣平縣男에 봉해졌다. 사당을 결성하고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권력을 휘둘렀다. 후에 중서령에 제수되고 河間郡公에 봉해졌다. 그러나 뇌물을 수수하고 매관매직한 일로 右金吾倉曹參軍 楊行穎의 탄핵을 받아 巂州로 유배되어 실각하여 울분 속에 죽었다. 무측천의 즉위 후에 揚州大都督에 추증되었으나 睿宗 연간에 다시 거두어졌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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