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以來
로 任蕃將者
가 如阿史那社尒‧契苾何力
이 皆以忠力
으로 奮
하나 然猶不爲上將
하고 皆大臣
이 摠制之
라
故上有餘權
하여 以制於下
러니 先天‧開元中
注+.에 若
‧
‧
等
이 自節度使
로 入相天子
하니
甫
가 疾儒臣
이 以方略
으로 積邊勞且大任
하여 欲杜其本以久其權
하여 卽說帝曰
以陛下雄
로 國家
가 富彊而夷狄未滅者
는 由文吏爲將
하여 憚矢石不身先
이라 不如用蕃將
이니
彼
가 生而雄
하여 養馬上長行陳
하니 天然性也
라 若陛下
가 感而用之
하사 死
하시면 夷狄
은 不足圖也
리이다
帝
가 然之
하사 因
으로 代林甫領節度而擢
‧高仙芝‧哥舒翰等
하여 專爲大將
하니 林甫
가 利其虜也
가 無入相之資
라
故祿山이 得專三道勁兵處하여 十四年不徙호대 天子가 安林甫策하사 不疑也러시니 卒稱兵蕩覆天下하여 王室이 遂微하니라
19-16-가
정관貞觀(627~649) 연간 이후로 번장에 임명한 자로써 아사나사이阿史那社尒‧계필하력契苾何力과 같은 자들이 모두 갈충진력竭忠盡力으로 애썼지만, 오히려 상장上將으로 삼지 않고 모두 대신이 이들을 총괄하여 제어하였다.
이 때문에 조정에는 충분한 권한이 있어서 관할 하의 절도사를 제어하였다. 그런데
선천先天(712~713)‧
개원開元(713~741) 연간에는
注+모두 명황明皇(현종玄宗)의 연호이다. 예컨대
설눌薛訥‧
곽원진郭元振‧
장열張說 등과 같은 자들이 절도사로부터 조정에 들어와 천자를 보좌하게 되었다.
이임보李林甫는 유신儒臣이 책략으로 변경 방비의 공로를 쌓고 장차 중용되는 것을 싫어하여 그 근원을 막아 자신의 권세를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곧 현종을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폐하의 뛰어난 재능으로 국가가 부강한데도 이적夷狄이 아직 멸망되지 않은 것은 문신이 장수가 되어 시석矢石을 두려워하여 몸소 앞장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번장을 임용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들은 나면서부터 용맹하여 말 위에서 자라서 행군과 포진에 뛰어나니 타고난 천성입니다. 만약 폐하께서 감화시켜 그들을 임용하여 사력을 다하도록 하신다면 이적은 도모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현종이 이 말을 옳게 여겨서 이를 계기로 안사순安思順이 이임보의 영삭방절도사의 직임을 대신하게 하였다. 안녹산安祿山‧고선지高仙芝‧가서한哥舒翰 등을 발탁하여 대장의 직임을 혼자서 담당하게 하였다.
이임보는 번장들이 조정으로 들어와 재상을 맡을 자격이 없는 것을 이롭게 여겼다. 이 때문에 안녹산이 3도道 지역의 강군을 혼자서 관장하여 14년 동안 교체되지 않았는데도 현종은 이임보의 계책을 편안하게 여겨 의심하지 않았으니, 결국 안녹산이 거병하여 천하를 뒤엎어 당나라가 마침내 미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