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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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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文帝時 上疏曰 凡人之智 能見已然이요 不能見將然하나니 夫禮者 禁於將然之前而法者 禁於已然之後
25-6-가
漢 文帝 때 賈誼가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무릇 사람의 智力은 이미 발생한 것은 알 수 있고 장차 발생할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무릇 禮라는 것은 장차 발생하기 전에 금하는 것이고 법이라는 것은 이미 발생한 뒤에 금하는 것입니다.
是故法之所爲用 易見而禮之所爲 難知也니이다 若夫慶賞 以勸善이요 刑罰 以懲惡이니
이 때문에 법의 효용성은 쉽게 알 수 있지만 예가 발생시키는 효과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포상은 선을 권면하는 것이고 형벌은 악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先王 執此之政 堅如金石하시며 行此之令 信如四時하시며 據此之公 無私如天地耳시니 豈顧不用哉리오마는
역대의 훌륭한 군왕들은 이러한 정사를 집행하기를 金石과 같이 굳건하게 하였으며, 이러한 정령을 시행하기를 사계절의 운행이 어김이 없는 것처럼 미덥게 하였으며, 이러한 공정함을 지키기를 하늘과 땅처럼 사심이 없게 하였을 뿐입니다. 어찌 포상과 형벌을 도리어 쓰지 않았겠습니까.
然而曰禮云禮云者 貴絶惡於未萌而起敎於微眇하여 使民日遷善遠罪而不自知也니이다
賈誼賈誼
그런데도 ‘예에 이르기를, 예에 이르기를’이라고 한 것은 아직 악이 싹트기 전에 악을 끊어버리고 일이 작고 미미할 때부터 교화를 시작하여 백성이 날마다 선으로 옮겨가고 죄를 멀리하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孔子訟乎인저하시니 爲人主者 莫如先審取舍
孔子가 말하기를 ‘訟事를 審理하는 것은 내가 남과 같겠지만 기필코 송사하는 일이 없어지도록 하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임금 노릇 하는 것으로는 먼저 취사선택을 잘 살펴보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取舍之極 定於內而安危之萌 應於外矣 安者 非一日而安也 危者 非一日而危也
취사선택의 기준이 마음속에서 정해지고 나면 安定과 危亡의 싹이 밖에서 나오게 됩니다. 안정은 하루아침에 안정되는 것이 아니고 위망은 하루아침에 위태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皆以積漸然이니 不可不察也니이다 人主之所積 在其取舍하니
모두 쌓는 것으로써 차츰차츰 그렇게 된 것이니 잘 살펴 알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군주가 쌓는 것은 취하고 버리는 데 달려 있습니다.
以禮義治之者 積禮義하고 以刑罰治之者 積刑罰이니 刑罰 積而民怨背하고 禮義 積而民和親하나니
禮義로 다스리는 군주는 예의를 쌓는 것이고 형벌로써 다스리는 군주는 형벌을 쌓는 것이니, 형벌이 쌓이면 백성이 원망하고 등지며 예의가 쌓이면 백성이 화목하고 친해집니다.
故世主 欲民之善 同而所以使民善者 或異하여 或道之以德敎하며 或敺之以法令하나니
그러므로 역대의 군주들이 백성이 선해지기를 바란 것은 같으나 백성이 선해지도록 한 방법은 간혹 달랐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군주는 인도하기를 덕과 교화로써 하고 어떤 군주는 몰아가기를 법제와 정령으로써 하였습니다.
道之以德敎者洽而民氣樂하고 敺之以法令者 法令極而民風哀하나니 哀樂之感 禍福之應也니이다
인도하기를 덕과 교화로써 하는 경우에는 덕과 교화가 무젖어들어 백성의 기상이 화락하고, 몰아가기를 법제와 정령으로써 하는 경우에는 법제와 정령이 극에 달하면 백성의 기풍이 슬픕니다. 슬픔과 화락함의 감응은 禍와 福이 이에 따라 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秦王之欲尊宗廟而安子孫 與湯‧武同하나湯‧武 廣大其德하사 行六七百歲而弗失하시고 秦王 治天下十餘歲 則大敗하니
秦 始皇이 宗廟를 높이고 자손을 편안히 하고자 한 것은 湯王이나 武王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탕왕과 무왕은 군왕으로서 덕을 크게 키워서 6, 7백 년이 지나도록 王統을 잃지 않았고, 진 시황은 천하를 다스린 지 10여 년 만에 크게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亡他故矣 湯‧武之定取舍 審而秦王之定取舍 不審矣니이다
이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탕왕과 무왕이 취하고 버릴 것을 확정한 것은 잘 살폈고, 진 시황이 취하고 버릴 것을 확정한 것은 잘 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夫天下 大器也 今人之置器 置諸安處則安하고 置諸危處則危하나니
천하는 중대한 기물입니다. 이제 사람이 기물을 둘 때는 안전한 곳에 놓아두면 기물이 안전하고, 위태로운 곳에 놓아두면 기물이 위태롭게 됩니다.
天下之情 與器亡以異하니 在天子之所置之니이다 湯‧武 置天下於仁‧義‧禮‧樂而德澤하여
천하라는 이 물건을 두는 상황이 기물과 다를 것이 없으니 천자가 두는 장소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湯王과 武王은 천하를 다스리는 강령을 仁‧義‧禮‧樂에 두어서 덕택이 젖어들어서
禽獸草木 廣裕하며 德被蠻貊四夷하여 累子孫數十世하니 天下所共聞也
禽獸와 草木이 번성하고 덕택이 사방의 오랑캐에까지 입혀져서 자손 수십 대를 이어갔으니, 이는 천하 사람들이 누구나 함께 들어서 아는 바입니다.
秦王 天下於法令刑罰하여 德澤 亡一有而怨毒 盈於世하여 憎惡之如仇讎하여 禍幾及身하고 子孫 誅絶하니
秦 始皇은 천하를 다스리는 강령을 법령과 형벌에 두어서 덕택은 하나도 없고 원한만 세상에 가득 차서 백성들이 원수처럼 그를 증오하여 화가 거의 자신에 미쳤고 자손까지 멸절되었으니,
天下之所共見也明效大驗邪 人之言 曰 聽言之道 必以其事觀之則言者 莫敢妄言이라하니
이것은 천하 사람들이 누구나 함께 보아서 아는 바입니다. 이것이 매우 명확히 드러난 징험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에 ‘말을 듣는 방법은 반드시 그가 한 일을 가지고서 살펴보면 말하는 자가 감히 허튼소리를 할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或言禮誼之不如法令하며 敎化之不如刑罰이라하나니 人主 胡不引殷‧周‧秦事以觀之也잇고
지금 어떤 사람은 예의가 법령만 못하고 교화가 형벌만 못하다고 하는데, 군주께서는 어찌 殷나라‧周나라와 秦나라의 일을 가지고 심사숙고하지 않으십니까.”
역주
역주1 25-6-가 : 《前漢書》 권48 〈賈誼傳〉, 《資治通鑑》 권14 〈漢紀6 文帝〉 前6년(기원전 174) 조에 보인다.
역주2 賈誼 : 기원전 201~기원전 168. 西漢 초의 정치가, 문학가이다. 洛陽 사람이다. 일찍이 郡內에 才名이 알려져 河南郡守 吳公의 막하에 들어갔다. 文帝가 즉위한 뒤에 博士가 되어 朝議에 참가해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太中大夫가 되었다. 正朔의 개정, 복색의 개혁, 법령의 개정 등을 건의하고 예악을 진작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周勃과 灌嬰 등 대신과 列侯의 견제를 받아 長沙王 吳著의 太傅로 폄적되었다. 뒤에 다시 長安으로 돌아와 梁懷王 劉揖의 太傅가 되었다. 양회왕이 낙마하여 급서하자, 이를 자책하다가 죽었다. 작품으로는 〈過秦論〉 등의 산문과 〈弔屈原賦〉‧〈鵩鳥賦(복조부)〉 등이 있고, 저서로는 《新書》가 있다. 《史記 卷84 賈生列傳》
역주3 : 사고본에는 ‘者’로 되어 있다.
역주4 聽訟……訟乎 : 《논어》 〈顔淵〉 제13장에 보인다.
역주5 : 사고본에는 ‘無’로 되어 있다.
역주6 : 대전본에는 없다.
역주7 : 사고본에는 없다.
역주8 : 대전본에는 ‘致’로 되어 있다.
역주9 : 사고본에는 ‘甚’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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