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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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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文帝 後元六年 匈奴 入上郡‧雲中하여 所殺略 甚衆이어늘
16-5-가1
孝文帝가 後元 6년(기원전 158)에 흉노가 上郡과 雲中으로 쳐들어와서 살육하고 노략질한 것이 매우 많자,
爲將軍하여하고 爲將軍하여하고 爲將軍하여하여 以備胡러니
周亞夫를 將軍으로 임명하여 細柳에 주둔시키고 劉禮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霸上에 주둔시켰으며 徐厲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棘門에 주둔시켜 흉노에 대비하였다.
自勞軍하실새 至覇上及棘門軍하사 直馳入하시니 將以下騎 送迎이러니
文帝가 친히 군대를 위문할 때 霸上의 군영과 棘門의 군영에 이르러 곧장 말을 달려 들어가니 장군 이하 기병들이 맞이하고 전송하였다.
已而 之細柳軍하시니 軍士吏 被甲銳兵刃하며 彀弓弩持滿注+彀, 張也.이라
이윽고 細柳의 군영으로 갔는데 軍士와 軍吏들이 갑옷을 착용하고 병기의 날을 벼렸으며 弓弩의 시위를 한껏 당겨놓았다.注+‘彀’는 ‘당기다’라는 뜻이다.
先驅하여 不得入하고 曰 天子 且至라한대 曰 軍中 聞將軍令이요 不聞天子之詔니라
先驅가 도착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천자께서 납실 것입니다.” 라고 하자 軍門都尉가 말하였다. “軍中에서는 장군의 영을 듣고 천자의 命을 듣지 않는다.”
居無何하사 又不得入하시고 乃使使持節하여 詔將軍하사대 吾欲入營勞軍이라하신대
조금 뒤에 문제가 도착하여 또 들어가지 못하였다. 문제는 이에 사자를 시켜 節을 가지고 장군(주아부)에게 명하기를 “내가 군영으로 들어가 군대를 위문하고 싶다.” 라고 하였다.
亞夫 乃傳言開壁門이어늘 天子 按轡徐行하사 至營하시니 亞夫 持兵揖曰 介冑之士 不拜 請以軍禮見하노이다
주아부가 이에 말을 전하여 군영의 문을 열게 하였다. 문제가 말을 몰아 徐行하여 군영에 도착하니 주아부가 무기를 든 채 揖을 하고 말하였다. “갑주를 착용한 무사는 절을 올리지 않으니 軍禮로 뵙겠습니다.”
天子 爲動하사 改容式車하사 使人稱謝하사대 皇帝 敬勞이라하시고
문제가 움찔하면서 용모를 고쳐 수레에서 軾을 하고 사람을 시켜 사례하기를 “황제가 정중히 장군을 위문한다.” 라고 하게 하였다.
成禮而去하실새 曰 嗟乎 眞將軍矣로다 曩者覇上‧棘門 若兒戲耳
예를 마치고서 떠날 때 문제가 말하였다. “아,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장군이다. 지난번 霸上의 군영과 棘門의 군영에서는 어린애 장난하는 것 같았다.
其將 固可襲而虜也어니와 至於亞夫하얀 可得而犯邪아하고 稱善者 久之러시다
그 군영의 장수들은 참으로 습격하여 사로잡을 수 있겠지만 주아부와 같은 경우에는 건드릴 수 있겠는가.” 훌륭하다고 칭찬하기를 오래도록 하였다.
月餘 匈奴 遠塞어늘 漢兵하니 乃拜亞夫爲하시다
한 달 남짓 있다가 흉노가 변경에서 멀리 물러가자 漢나라 군대가 철군하니, 이에 주아부를 中尉로 임명하였다.
역주
역주1 16-5-가1 : 관련 내용이 《史記》 卷57 〈絳侯周勃世家 周亞夫〉, 《前漢書》 卷40 〈周勃傳 周亞夫〉, 《資治通鑑》 卷15 〈漢紀7 文帝〉 後元 6년(기원전 158) 기사 등에 보인다. 후원 6년 겨울에 匈奴가 침입하여 기병 3만은 上郡을, 다른 기병 3만은 雲中을 공격하였다. 이에 문제가 中大夫 令免을 車騎將軍으로 삼아 飛狐에 주둔하게 하고 前 楚相 蘇意를 將軍으로 삼아 句注에 주둔하게 하고 將軍 張武를 北地에 주둔하게 하였다. 또한 河內 太守 周亞夫‧宗正 劉禮‧祝玆侯 徐厲 등도 장군으로 삼아 흉노를 방어하게 하였는데, 細柳에 주둔시킨 주아부의 군영을 시찰한 문제가 감탄하였다. 한 달쯤 뒤에 흉노가 변경에서 멀리 물러가자, 문제가 마침내 주아부를 中尉로 임명하였다.
역주2 周亞夫 : ?~기원전 143. 沛縣 사람으로 漢나라 창업에 공을 세운 絳侯 周勃의 차남이다. 文帝 後元 2년(기원전 162)에 條侯로 봉해졌다. 後元 6년(기원전 158)에 匈奴가 침입하자 將軍이 되어 細柳에 주둔하였는데 軍紀가 엄정하여 문제가 직접 군을 위문하러 갔을 때 찬탄을 받았다. 이후 中尉가 되었으며 景帝가 즉위하자 車騎將軍이 되었다. 前元 3년(기원전 154)에 吳‧楚 7國이 반란을 일으키자 太尉로 임명되어 난을 평정한 뒤에 丞相이 되었다. 후에 경제가 栗太子를 폐하는 일을 반대했다가 경제와 소원해졌다. 中元 3년(기원전 147)에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집에 있었는데, 나중에 아들이 사적으로 황제가 사용하는 물건을 사들여 고발을 당한 데에 연루되어 廷尉에게 심문을 당하자 이에 굽히지 않고 식음을 전폐한 끝에 굶어 죽었다.
역주3 細柳 : 현재 陝西省 咸陽市 서남쪽 渭河의 북쪽 기슭에 있었다. 《施丁 주편, 漢書新注, 三秦出版社, 1994, 1474쪽》
역주4 劉禮 : ?~기원전 151. 楚元王 劉交의 아들이다. 文帝 前元 元年(기원전 179)에 平陸侯로 봉해졌으며 景帝 前元 4年(기원전 153)에는 조카인 楚王 劉戊가 七國의 난 때 가담했다가 피살된 것을 계기로 楚王에 봉해졌다. 시호는 文이다.
역주5 覇上 : 현재 陝西省 西安市 동쪽에 있었다. 《施丁 주편, 漢書新注, 三秦出版社, 1994, 1474쪽》
역주6 徐厲 : ?~기원전 157. 徐悍이라고도 한다. 舍人의 신분으로 劉邦을 따라 沛에서 봉기하였으며, 후에 郞中이 되어 漢王이 된 유방을 따라 蜀으로 들어갔다. 高后 4년(기원전 184)에 松玆侯로 봉해졌으며 文帝 後元 6년(기원전 158)에 匈奴가 침입하자 長安 부근의 棘門에 주둔하였다. 시호는 夷이다.
역주7 棘門 : 현재 陝西省 咸陽市 동북쪽에 있었다. 《施丁 주편, 漢書新注, 三秦出版社, 1994, 1474쪽》
역주8 軍門都尉 : 서한 때 特設된 軍官으로 지위가 將軍에 버금가는 고위 군관이었다. 軍營 문의 경비를 담당하였다. 《漢書辭典 軍門都尉》
역주9 : 대전본‧사고본에는 없다. 통행본 《전한서》에는 있다.
역주10 中尉 : 秦나라 때 창설된 관직으로 당시에는 도성의 순찰을 관장하였다. 西漢 초에는 군대를 통솔하는 무관직으로서 도성의 치안을 담당하였다. 《中國官制大辭典 中尉》 《漢書辭典 中尉》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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