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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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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月 하여 朝朔望하고 러니 恭‧顯하여 皆以爲中郞하다
18-10-가
4월에 조서로 蕭望之에게 關內侯‧給事中의 관작을 내려서 초하루와 보름에 조회하도록 하였다. 다시 周堪과 劉更生을 불러 諫大夫에 임명하고자 하였는데, 弘恭과 石顯이 아뢰어서 모두 中郞에 임명하였다.
器重望之不已하사 欲倚以爲相하니 恭‧顯及 皆側目於望之等注+許氏‧史氏皆外戚也.하더라
元帝가 蕭望之를 계속해서 매우 중시하여 그를 의지하여 승상으로 삼으려 하자, 弘恭‧石顯과 외척인 許氏‧史氏의 자제들이 모두 소망지 등을 질시하였다.注+許氏와 史氏는 모두 외척이다.
更生 乃使其外親하여이라 宜退恭‧顯하여 以章蔽善之罰하시고 進望之等하여 以通賢者之路하소서
劉更生이 이에 자신의 외갓집 사람을 시켜 다음과 같이 변고를 고하게 하였다. “지진이 일어난 것은 아마도 홍공 등 때문인 듯합니다. 의당 홍공과 석현을 내쳐서 賢者를 가린 벌을 밝게 드러내시고 소망지 등을 등용하여 賢者의 길을 여소서.”
書奏 恭‧顯 疑更生所爲하여 白請考姦詐하니 辭果服이어늘 遂逮更生繫獄하여 免爲庶人하다
글이 상주되자 홍공과 석현은 유갱생이 한 것이라고 의심하여 원제에게 아뢰어 그 간사한 정상을 조사하도록 청하였는데, 供招에서 자신들의 예측대로 자복하자 마침내 유갱생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 면직시켜 庶人으로 만들었다.
會望之子伋 亦上書訟한대 事下 有司 復奏望之敎子上書하여 失大臣體하니 이라 請逮捕어늘
마침 소망지의 아들 蕭伋 역시 글을 올려 소망지의 예전 일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였는데, 안건이 회부되자 담당 관리가 다음과 같이 覆奏하였다. “蕭望之가 아들을 시켜 글을 올리게 해서 대신의 체모를 잃어버렸으니 不敬합니다. 체포하소서.”
恭‧顯等 知望之素高節不詘辱하고 建白 望之 前幸得不坐하여 復賜爵邑이어시늘 不悔過服罪하고 敎子上書하여 歸非於上하니
弘恭과 石顯 등은 소망지가 평소에 절조를 중시하여 굴욕을 받지 않을 것임을 알고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소망지가 전에 요행으로 죄에 걸리지 않아 폐하께서 다시 官爵과 식읍을 내려주셨는데도 잘못을 뉘우치며 죄를 인정하지 않고 아들에게 글을 올리도록 하여 폐하에게 그 잘못을 돌렸으니,
自以託師傅 終必不坐라하나니 非頗屈望之於牢獄하여 塞其怏怏心則聖朝 無以施恩厚니이다
자신이 폐하의 사부라는 것을 믿고 어찌되었든 반드시 죄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소망지를 옥에 가두어서 굴욕을 상당히 받게 하여 그 앙앙불락 원망하는 마음을 막지 않는다면 聖朝에서 후한 은택을 베풀 길이 없을 것입니다.”
曰 蕭太傅 素剛하니 安肯就吏리오 顯等 曰 人命 至重하고 望之所坐 語言薄罪 必無所憂니이다
元帝가 말하였다. “蕭太傅가 평소 강직하니 어찌 獄吏에게 나아가 심문을 받으려고 하겠는가?” 石顯 등이 대답하였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중하고 蕭望之가 저촉한 죄는 말로 인한 작은 죄입니다. 반드시 폐하께서 우려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乃可其奏하신대 封詔以付하여 令召望之하고 急發車騎하여 圍其第注+執金吾, 掌兵官也.러니
원제가 이에 그 상주를 윤허하자, 석현이 조서를 밀봉하여 謁者에게 보내 소망지를 부르도록 하고, 급히 執金吾의 기병을 출동시켜 소망지의 집을 포위하였다.注+‘執金吾’는 군사를 관장하는 관직이다.
使者하여 召望之한대 望之 飮鴆自殺하니 天子 聞之하시고 驚拊手曰 曩固疑其不就牢獄이러니 果然殺吾賢傅로다
사신이 도착하여 소망지를 부르자, 소망지가 鴆毒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천자가 이 소식을 듣고 놀라 손뼉을 치며 말하였다. “내 일찍이 참으로 그가 감옥에 가지 않을 것임을 의심하였는데, 우려했던 대로 내 어진 사부를 죽였구나!”
太官 方上晝食注+太官, 主御膳.이러니 卻食涕泣하시고 召顯等하여 責問以議不詳하신대謝良久然後하다
太官이 마침 점심 식사를 올렸는데,注+‘太官’은 임금의 음식을 주관한다. 원제가 식사를 물리치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석현 등을 불러서 논의가 면밀하지 못하였다고 문책하자, 석현 등이 모두 관모를 벗고 한참을 사죄한 뒤에야 그만두었다.
역주
역주1 18-10-가 : 《資治通鑑》 권28 〈漢紀20 元帝 上〉 初元 2년(기원전 47) 4월과 7월 조에 보인다.
역주2 詔賜……事中 : ‘關內侯’는 爵位名이다. 秦‧漢 때 20等 軍功爵 중 第19級으로, 徹侯의 바로 다음 작위이다. 식읍이 京畿에 있기 때문에 이름을 관내후라고 하였다. ‘給事中’은 加官이다. 이 관함이 덧붙은 경우에는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임금의 자문에 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음에 나오는 구절처럼 초하루와 보름에 조회한 것이다. 18-8-가 ‘給事中爲加官’ 주 참조.
역주3 復徵……中郞 : 漢 元帝 初元 2년(기원전 47) 7월의 일이다. ‘中郞’은 관직명이다. 郎官의 하나로, 宿衛를 담당하였다.
역주4 諫大夫 : 관직명이다. 정사를 의론하는 데 참여하였으며 정원이 없어 수십 명에 이르기도 하였다.
역주5 許史子弟 : 漢나라 제11대 임금 宣帝(기원전 91~기원전 49, 재위 기원전 74~기원전 49)의 황후 許氏 집안의 자제와 선제의 조모 史良娣 집안의 史氏 자제를 이른다. 元帝(기원전 74~기원전 33, 재위 기원전 49~기원전 33)의 아버지인 선제는 霍光(?~기원전 68)과 上官桀(기원전 140~기원전 80) 일족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허씨 일가 3명과 사씨 일가 4명, 선제의 생모 王氏의 집안사람 2명을 侯로 봉하였으며, 이들의 자제인 許延壽, 史高, 王接을 모두 大司馬‧車騎將軍에 임명하였다.
역주6 上變事 : 漢나라 제도에 臣民이 非常의 사태를 고하고자 할 때에는 尙書의 상주를 통하지 않고 곧바로 황제에게 기밀 奏章을 올릴 수 있었는데, 바로 이것을 ‘상변사’, 또는 ‘上封事’라고 하였다.
역주7 地動殆爲恭等 : ‘地動’은 漢 元帝 2년(기원전 47) 2월 28일 무오일에 지금의 감숙성 臨洮縣인 隴西郡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성곽과 가옥이 무너지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과, 동년 7월 기유일에 다시 또 지진이 발생한 것을 이른다. 이 소에 따르면 홍공이 소망지 등의 안건을 판결한 지 석 달 만에 지진이 일어났으며, 홍공이 병을 칭탁하고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復官하자 눈이 내린 사실을 통해 홍공 때문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資治通鑑 卷28 漢紀20 元帝 上》 《漢書 卷36 楚元王傳 向》
역주8 望之前事 : 소망지가 이전에 석현의 무고로 인해 옥에 갇혔던 일을 이른다. 18-9-가 참조.
역주9 不敬 : 漢代 罪名의 하나이다.
역주10 謁者 : 18-4-가 ‘御史‧謁者‧侍中’ 주 참조.
역주11 執金吾 : 관직명이다. 주로 담당하는 일은, 첫째 京師를 순찰하는 것, 둘째 황제의 出行 때 前導가 되는 것, 셋째 禁衛軍의 北軍을 통솔하는 것이었다. ‘金吾’는 《漢書》 顔師古의 주에서는, 새의 이름으로 상서롭지 못한 일을 피하는 것을 의미하다고 보았다. 집금오는 천자가 출행할 때 앞에서 非常의 일을 막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晉나라 崔豹의 《古今注》에서는 ‘金吾’를 양쪽 끝을 황금으로 도금한 구리 재질의 곤봉으로 보았다.
역주12 免冠 : 사죄한다는 의미이다. 18-11-가 ‘免冠頓首’ 주 참조.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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