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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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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武帝時 文華敏給하고 曲營世譽하여 得幸於上
18-17-가
梁 武帝 때 中領軍 朱异가 文才가 있고 명민하며 세상의 명예를 다방면으로 추구하여 무제에게 총애를 받았다.
善伺候人主意爲阿諛하여 用事三十年 廣納貨賂하고 欺罔視聽하니 遠近 莫不忿疾하며
주이가 군주의 뜻을 잘 살펴 비위를 맞추고 아첨해서 권력을 전횡한 지 30년 동안 널리 뇌물을 받으며 무제의 이목을 속이니, 멀고 가까운 사람을 막론하고 주이에 대해 분노하고 미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園宅‧玩好‧飮膳‧聲色 窮一時之盛하고 每休 車馬 塡門이러라
또한 주이는 정원과 주택‧玩好物‧음식‧음악과 여색에 있어 당시에 가장 좋은 것들을 향유하였고 매번 휴가를 갈 때면 거마가 그의 집 문을 가득 메웠다.
역주
역주1 18-17-가 : 《資治通鑑》 권158 〈梁紀13 武帝13〉 大同 5년(539) 1월 조에 보인다.
역주2 中領軍 : 武官名이다. 남조 宋‧齊‧梁‧陳에서는 禁軍을 統領하였다.
역주3 朱异 : 483~549. 南朝 梁나라의 權臣이다. 자는 彦和이며 吳郡 錢唐 사람으로, 五經과 文史百家에 두루 능통하였다. 21세 때 지금의 南京인 수도 建康으로 가서 尙書令 沈約(441~513)의 눈에 들어 추천을 받고 규정상 25세에야 벼슬할 수 있었던 격례를 깨고 揚州議曹從事史에 특별히 임명되었다. 이후 30여 년 동안 太學博士, 中書郞, 散騎常侍, 右衛將軍, 侍中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梁 武帝 太淸 2年(548)에 河南王 侯景(503~552)이 주이를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기병하여 궁성을 포위하고 황태자 역시 주이를 배척하자 두려움과 분노로 병을 얻어 죽었다. 사후에 尙書右僕射에 추증되었다. ‘侯景’은 18-19-가 ‘侯景’ 주석 참조. 《南史 卷62 朱异列傳》
역주4 이러라 : 509본에는 ‘이러니’로 되어 있다.
역주5 : 사고본에는 ‘暇’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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