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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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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8-18-나(按)
按 婦欲顓其夫 故入宮者 必見妬하고 臣欲顓其君이라 故入朝者 必見嫉하나니
使婦之用心‧如則不肯專其夫矣 臣之用心 其心休休如有容則不肯專其君矣
原注
方是時 以姦諛得幸於帝하여 惟恐才能之出己右者 得進而分其寵이라
故雖區區一徐摛라도 且不見容而必以計去之하니 然其言曰 摛 年老愛泉石하여 欲求一郡自養이라하니
使帝以异言而質之摛則其姦罔 立見矣로되 然异 敢於爲此者 蓋揣帝之意 惟己是信하니 必不加質問故也
後之姦臣 顓國擅政 不欲人主它有親任者 大率以術去之하나니 如异者 蓋其一也니이다


原注
18-18-나()
[신안臣按] 부인은 자기 남편을 독차지하고자 하기 때문에 입궁하는 여인이 반드시 질투를 받게 되며, 신하는 자기 임금을 독차지하고자 하기 때문에 조정에 들어오는 자가 반드시 질투를 받게 됩니다.
만일 부인의 마음 씀이 〈규목樛木〉 시와 같고 〈종사螽斯〉 시와 같다면 자기 남편을 독차지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고, 신하의 마음 씀이 〈진서秦誓〉의 한 신하와 같이 그 마음이 곱고 고와 용납함이 있으면 자기 임금을 독차지하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原注
이 당시 주이朱异가 간사함과 아첨으로 무제武帝에게 총애를 얻어서 오직 재주가 자신보다 나은 자가 등용되어 그 총애를 나누어가지게 될까만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대단치 않은 일개 서리徐摛라 할지라도 용납하지 못하고 한사코 계책을 써서 제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로는 “서리가 연로하고 산수山水를 좋아하여 그 뜻이 자봉自奉할 정도의 작은 고을을 맡는 데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무제가 주이의 말을 가지고 서리에게 물어보았다면 주이가 간사하게 속인 것이 바로 드러났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이가 이런 짓을 하는 데 과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제의 뜻이 자기 말만 믿으니 필시 캐묻지는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입니다.
후세의 간신이 국정을 전횡할 때 군주에게 달리 친근히 하고 신임하는 자가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경우 대체로 술수를 써서 제거하였으니, 주이 같이 하는 것은 그 가운데 한 방법입니다.


역주
역주1 樛木 : 《시경》 〈周南〉의 편명으로 시는 다음과 같다. “남쪽에 가지가 아래로 드리워진 나무가 있으니 칡덩쿨이 감겨 있도다. 즐거운 군자여 복록으로 편안히 하도다. 남쪽에 가지가 아래로 드리워진 나무가 있으니 칡덩굴이 덮여 있도다. 즐거운 군자여 복록이 도와주도다. 남쪽에 가지가 아래로 드리워진 나무가 있으니 칡덩굴이 얽혀 있도다. 즐거운 군자여 복록이 이루어주도다.[南有樛木 葛藟纍之 樂只君子 福履綏之 南有樛木 葛藟荒之 樂只君子 福履將之 南有樛木 葛藟縈之 樂只君子 福履成之]” 毛序에 〈樛木〉은 “후비의 은덕이 아래에 미침을 읊은 것으로, 은덕이 아랫사람들에게 미치고 질투하는 마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后妃逮下也 言能逮下而無嫉妬之心焉]”라고 하였다. 이 시에서 ‘군자’는 후비를 가리킨다.
역주2 螽斯 : 《시경》 〈周南〉의 편명으로 시는 다음과 같다. “메뚜기의 깃이 화목하게 모였으니 너의 자손이 번성함이 당연하도다. 메뚜기의 깃이 떼 지어 나니 너의 자손이 계속됨이 당연하도다. 메뚜기의 깃이 모였으니 너의 자손이 번성함이 당연하도다.[螽斯羽詵詵兮 宜爾子孫振振兮 螽斯羽薨薨兮 宜爾子孫繩繩兮 螽斯羽揖揖兮 宜爾子孫蟄蟄兮]” 毛序에 〈螽斯〉는 “후비의 자손이 많음을 읊은 것이니, 메뚜기와 같이 투기하지 않으면 자손이 많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后妃子孫衆多也 言若螽斯不妬忌 則子孫衆多也]”라고 하였다.
역주3 秦誓……有容 : 《서경》 〈周書 秦誓〉 제6장에 “곰곰이 내 생각해보니, 만일 한 신하가 정성스럽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다른 재주가 없으나 그 마음이 곱고 고와 용납함이 있는 듯하여, 남이 가지고 있는 재주를 자신이 소유한 것처럼 여기며, 남의 훌륭하고 통명함을 마음속에 좋아하되 입에서 나오는 것보다도 더 좋아한다면, 이는 남을 포용하는 것이다. 나의 자손과 백성을 보호할 것이니, 또한 이로움이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昧昧我思之 如有一介臣 斷斷猗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彦聖 其心好之 不啻如自其口出 是能容之 以保我子孫黎民 亦職有利哉]”라는 내용이 보인다. ‘秦誓’는 《서경》의 마지막 편명으로, 춘추시대 秦 穆公(기원전 682~기원전 621, 재위 기원전 659~기원전 621)이 사람들에게 맹세하는 내용이다. 〈書序〉에 따르면 진 목공이 鄭나라를 정벌했다가 晉 襄公에게 崤山에서 패전하고 돌아와 지은 것이다.
역주4 : 사고본에는 ‘个’로 되어 있다.
역주5 : 사고본에는 ‘焉’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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