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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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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王爲學之本
역대 성왕聖王이 학문을 해나갔던 근본
漢光武明帝唐三宗之學
광무제光武帝명제明帝 태종太宗현종玄宗헌종憲宗의 학문
漢 光武帝 학문
광무제光武帝의 학문
4-1-가
受尙書하사 通大義注+東觀記云 : , 大義略擧, 因學世事.”러시니
광무제光武帝가 《상서尙書》를 전수받아 대의大義를 통달하였다注+동관한기東觀漢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광무제光武帝여강廬江허자위許子威에게 《상서尙書》를 전수받아 대의大義를 대체적으로 파악하게 되자 뒤이어 세상일을 배웠다.” .
榮入說하고 甚善之하사 每朝會 輙令榮으로 敷奏經義하시고 稱善하시다
환영桓榮징소徵召하여 조정에 들어와 강설하게 하고는 매우 좋다고 여겨서 조회 때마다 환영으로 하여금 경전의 의미를 부연하여 아뢰게 하고는 좋다고 칭찬하였다.
視朝하사 日仄乃罷하시고 數引公卿하여 講論經理하여 夜分乃寐하시니
광무제는 매일 아침 조회를 보아 날이 저물어서야 조회를 파하고, 자주 공경公卿낭장郎將들을 인견하여 경전의 이치를 강론하고서 한밤중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皇太子 見帝勤勞不怠하고 承間諫曰
황태자가 부지런히 애쓰면서 게을리하지 않는 광무제의 모습을 보고 틈을 타 간하였다.
陛下 有禹‧湯之明而失黃‧老養性之福하시니
“폐하께서는 우왕禹王탕왕湯王의 명철함이 있으시지만 황제黃帝노자老子양생養生하는 을 잃고 계십니다.
願頤愛精神하사 優游自寧하소서
바라건대 정신을 보양保養하시어 여유롭게 스스로를 편히 하십시오.”
광무제는 대답하였다.
我自樂此하니 不爲疲也注+太子, 也.로다
“내 스스로 이를 즐기고 있으니, 피곤하지 않다.”注+태자太子’는 현종顯宗(明帝)이다.
역주
역주1 4-1-가 : 《後漢書》 卷1下 〈光武帝紀〉, 《資治通鑑》 卷44 〈光武帝 下〉에 보인다.
역주2 光武 : 25∼57(재위 기원전 6~57). 東漢의 초대 황제 劉秀로, 光武는 시호이다. 자는 文叔, 묘호는 世祖이다. 南陽 蔡陽 사람으로, 高祖 劉邦의 9세손이다. 젊었을 때 長安에서 공부하였으며, 王莽의 新나라 말에 군웅이 봉기하자 거병하여 昆陽에서 왕망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25년에 즉위하여 漢을 재건하고 洛陽에 도읍하였다. 이후 남은 군웅들을 평정하고 36년에 천하를 완전히 통일하였다. 즉위 후 조세와 요역을 경감하고 지방에 대한 중앙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였으며 儒敎를 숭상하여 禮敎主義를 확립하였다.
역주3 桓榮 : ?~59. 자는 春卿으로, 沛郡 龍亢 사람이다. 今文經學家로, 박사 朱普에게 《歐陽尙書》를 배웠으며, 이를 줄여 《桓君大太常章句》를 지었다. 광무제가 불러서 《尙書》를 강하게 하고 議郞으로 삼았다. 太子少博와 太常을 역임하였다. 明帝가 즉위한 뒤 스승의 예우를 받았으며 關內侯에 봉해졌다. 丁鴻 등을 제자로 길렀다.
역주4 : 대전본에는 ‘亘’으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피휘이다.
역주5 : 사고본에는 ‘日’로 되어 있다. 저본에는 ‘朝’로 되어 있으나, 朝鮮의 피휘이므로 바로잡았다.
역주6 郎將 : 武官의 명칭으로, 九卿 중의 하나인 郎中令(光祿勳) 소속의 五官中郎將‧左中郎將‧右中郎將을 가리킨다. 官秩은 二千石에 버금갔으며 지위는 將軍의 다음이다. 省外의 宿衛를 담당한 衛尉와 짝하여 宮內의 宿衛와 車騎를 주관하였는데, 秦나라 때 설치한 것을 漢나라에서 그대로 따르고 光祿勳에 소속시켰다. 《漢書辭典 郎將》
역주7 受尙……世事 : 《後漢書》 및 《東觀漢記》 등에 따르면, 光武帝 劉秀는 南陽郡 蔡陽縣 사람으로 9세 때 부모를 잃고 숙부 劉良에게 길러졌으며 농사일에 힘썼는데, 王莽 天鳳(14~19) 연간에 長安에 가서 中大夫였던 廬江 사람 許子威를 스승으로 모시고 《尙書》를 배웠다. 姚之駰의 《後漢書補逸》 注에 의하면, 이때 광무제는 그 대의를 통달하여 이미 천하를 다스리는 법을 구비하였다고 한다. 宋 范祖禹의 《帝學》에는 광무제가 29년(建武5)에 太學을 세우고서 籩豆‧干戚의 의례를 구비하고 《상서》를 배워 대의를 통달하였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이때는 桓榮에게 다시 《歐陽尙書》를 배운 것이다. 환영은 이를 계기로 당시 태자였던 明帝의 스승이 되었으며, 東漢에서는 《구양상서》가 가장 유행하게 되었다. 《後漢書 卷1下 光武帝紀》 《東觀漢記 卷1 帝紀1 光武帝》 《後漢書補逸 卷1 東觀漢記 光武帝》 《帝學 卷2》 《東觀漢記 卷16 桓榮列傳》 《尙書考異 卷1 後漢書儒林傳》
역주8 許子威 : ?~?. 廬江 合肥 사람으로, 中大夫를 지냈다. 광무제가 젊었을 때 그에게 《尙書》를 배웠다는 사실이 劉珍의 《東觀漢記》에 보인다. 陳喬樅(1809~1869)은 《今文尙書經說考》에서 광무제와 허자위가 배웠던 《尙書》가 《歐陽尙書》일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東觀漢記 卷1 帝紀1》 《今文尙書經說考 卷27 周書31》 《江南通志 卷164 人物志 廬州府》
역주9 顯宗 : 28~75(재위 57~75). 東漢의 2대 황제 劉莊으로, 顯宗은 묘호이다. 초명은 陽, 시호는 明帝이다. 光武帝의 4남으로, 어머니는 陰皇后이다. 43년(建武19)에 태자가 되었다. 그는 《春秋》와 《尙書》에 밝았으며 부친을 계승하여 禮敎主義를 확립하였다. 法令에 능한 관리를 등용하여 內治에 힘썼으나 형벌을 좋아하여 법이 엄격하고 냉혹하였다. 대외적으로는 흉노를 정벌하고 西域과 통교하는 등 적극적이었으며, 67년(永平10)에는 佛敎를 수용하여 전파하였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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