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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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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 卷24
大學衍義 卷24
格物致知之要(二)
사물의 원리를 깊이 연구하여 知性의 힘을 극대화하는 핵심적인 방법들(2)
辨人材
人材를 구별하는 방법들
憸邪罔上之情[佞幸之臣]
奸邪한 자들이 임금을 속인 정상[아첨하여 총애받는 신하]
24-1-가
이어늘 問 群臣 誰可相者 管仲 曰 知臣 莫若君이니이다
齊 桓公 말에 管仲이 병세가 위독해지자 환공이 물었다. “신하들 가운데 누가 相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겠소?” 관중이 대답하였다. “신하를 아는 것이 임금만 한 이가 없습니다.”
公曰 何如 對曰 殺子以適君하니 非人情이라 不可니이다
환공이 물었다. “易牙가 어떻겠소?” 관중이 대답하였다. “자식을 죽여 임금의 구미에 맞추었으니 人之常情이 아니므로 불가합니다.”
何如 對曰 倍親以適君하니 非人情이라 難近이니이다
환공이 말하였다. “開方이 어떻겠소?” 관중이 대답하였다. “어버이를 등져 임금의 비위를 맞추었으니 인지상정이 아니므로 가까이하기 어렵습니다.”
公曰 何如 對曰 自宮以適君注+宮, 腐刑也.하니 非人情이라 難親이니이다
환공이 말하였다. “豎刁가 어떻겠소?” 관중이 대답하였다. “스스로 거세하여 임금의 비위를 맞추었으니注+‘宮’은 거세하는 형벌이다. 인지상정이 아니므로 가까이하기 어렵습니다.”
管仲커늘 用三子하니 三子 專權이러니커늘 易牙 入與豎刁하여 殺群吏注+諸大夫也.而立러니
관중이 죽자 환공이 세 사람을 중용하니 세 사람이 권력을 전단하였다. 환공이 죽자 역아가 입궐해서 수조와 함께 內寵을 통하여 대부들을注+
管仲管仲
‘群吏’는 대부들이다.
죽이고 公子 無詭를 옹립하였다.
伐齊한대 齊人 殺無詭하고이러니 孝公커늘 公弟潘 因開方하여 殺孝公子而立하니라
宋나라가 齊나라를 정벌하였는데, 제나라 사람들이 무궤를 죽이고 孝公을 옹립하였다. 효공이 죽자 효공의 아우 潘이 개방을 통하여 효공의 아들을 죽이고 개방이 반을 옹립하였다.
역주
역주1 24-1-가 : 《史記》 卷32 〈齊太公世家〉에 보인다. 《韓非子》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管仲이 齊 桓公에게 豎刁(수조)와 易牙를 제거하고 開方을 멀리하라고 간하였으나, 환공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훗날 수조‧역아‧개방이 난을 일으키자 환공은 飢渴에 시달리면서 죽음을 맞았으며, 시신 또한 제때 수습되지 않아 구더기가 생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韓非子 十過, 難1》
역주2 齊桓公 : ?~기원전 643(재위 기원전 685~기원전 643). 춘추시대 齊나라의 임금으로 성은 姜, 씨는 呂, 이름은 小白으로, 桓은 시호이다. 齊 釐公(희공)의 아들이자 襄公의 동생이며, 公子 無詭‧孝公(昭)‧昭公(潘)‧懿公(商人)‧惠公(元)의 아버지이다. 즉위한 후 管仲을 등용하여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春秋五霸의 한 사람이 되었으나, 말년에는 易牙‧開方‧豎刁 등과 같은 간신들을 중용하여 국정을 그르쳤다. 죽기 전에 아들 昭(孝公)를 태자로 세웠다. 기원전 643년 10월에 병사하고 나서 역아 등 간신들로 인하여 제나라가 혼란스러워지는 바람에 시신도 제때 수습되지 않아 12월에야 入棺을 할 수 있었으며, 이듬해 8월에 이르러서야 안장될 수 있었다.
역주3 管仲 : ?~기원전 645. 이름은 夷吾로, 仲은 자이며, 齊나라 潁上 사람이다. 齊 桓公이 즉위한 기원전 685년에 大夫로 등용되었으며, 후에 제나라의 相이 되었다. 수십 년간 집권하면서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환공을 춘추시대 최초의 霸者로 만들었다. 병사한 후에 易牙‧開方‧豎刁 등으로 인하여 상당 기간 동안 정국이 혼란스러웠음에도 제나라가 그의 정책을 준용한 덕에 제후들 사이에서 한동안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역주4 易牙 : 생몰년은 자세하지 않다. 雍巫라고도 한다. 《韓非子》에 따르면, 珍味를 좋아하는 제 환공이 인육만 먹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역아가 자신의 첫아이를 쪄 환공에게 올려서 그의 환심을 샀다. 환공의 후궁이자 公子 無詭의 생모인 長衛姬의 총애를 받았는데, 환공이 죽은 뒤 豎刁와 함께 무궤를 임금으로 옹립하였다. 《韓非子 難1》
역주5 開方 : 생몰년은 자세하지 않다. 《韓非子》에 따르면 衛나라의 公子로, 태자의 신분을 버리고서 齊 桓公을 섬겼다. 환공을 섬기면서 15년 동안 고국으로 돌아가 부모를 만나지 않았다. 기원전 633년에 齊 孝公이 죽었을 때 효공의 동생 潘이 효공의 아들을 죽이는 데 협력하였다. 《韓非子 十過, 難1》
역주6 豎刁 : 생몰년은 자세하지 않다. 기록에 따라 豎刀 또는 豎貂(수초)라고도 한다. 齊 桓公의 총애를 받았던 환관으로, 환공 사후에 易牙가 환공의 아들 無詭를 옹립할 때 협력하였다.
역주7 內寵 : 杜預에 따르면, 內官으로서 권력이 있고 임금의 총애를 받는 자를 가리킨다. 《史記 卷32 齊太公世家 裴駰集解》
역주8 公子無詭 : ?~기원전 643(재위 기원전 643). 齊 桓公의 아들로, 長衛姬의 소생이다. 기원전 643년에 환공이 죽자 易牙‧豎刁 등의 도움을 받아 옹립되었으나 재위 3개월 만에 죽임을 당했다.
역주9 孝公 : ?~기원전 633(재위 기원전 642~기원전 633). 이름은 昭이며, 齊 桓公의 아들로, 鄭姬의 소생이다. 환공이 살아 있을 때 태자가 되었다. 환공이 죽은 뒤 이복형제인 公子 無詭‧元(惠公)‧潘(昭公)‧商人(懿公) 등의 무리가 공격하는 바람에 송나라로 달아났는데, 환공이 죽기 전에 宋 襄公에게 효공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 후 송 양공의 보호를 받으며 제나라로 귀국하자 제나라 사람들이 무궤를 죽였는데, 송나라가 환공의 다른 아들들의 세력을 제압한 뒤에 즉위하였다.
역주10 : ?~기원전 614(재위 기원전 633~기원전 614). 齊 昭公이다. 桓公의 아들로, 葛嬴(갈영)의 소생이다. 기원전 633년에 이복형인 孝公이 죽자, 간신 開方과 결탁하여 효공의 아들을 죽이고 즉위하였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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