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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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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高 所殺及報私怨 衆多 恐大臣 奏事 毁之하여
且陛下 富於春秋하시니 未必盡通諸事 今坐朝廷하사 譴擧 有不當者則見短於大臣이니 非所以示神明於天下也
且陛下 深拱禁中하사 與臣及侍中習法者 待事하여 事來 有以揆之
如此 則大臣 不敢奏疑事하고 天下 稱聖主矣리이다 二世 用其計하여
乃不坐朝廷見大臣하고 居禁中하여 事皆決於高하더라


18-3-가
조고趙高는 죽이거나 개인적인 원한으로 보복한 사람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대신大臣들이 정사를 주달할 때 이것으로 자신을 헐뜯을까 두려웠다.
이에 이세二世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천자가 존귀한 까닭은 단지 그 음성만을 들을 수 있을 뿐 신하들이 그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라고 호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폐하께서는 춘추가 한창이시니 여러 정사에 반드시 모두 다 능통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조정에 앉아 신하들을 견책하시거나 등용하시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대신들에게 약점을 보이는 것이니, 이는 천하에 신성함과 영명함을 보여주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리고 폐하께서는 궁궐 깊숙한 곳에서 팔짱을 끼고 신이나 궁중에서 모시는 근시近侍 중에 법을 잘 아는 자들을 통해 정사를 기다렸다가 안건이 오면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대신들은 감히 의심스러운 일을 아뢰지 못할 것이고 천하 사람들은 성주聖主라고 칭송할 것입니다.” 이세가 그 계책을 채택하였다.
이에 조정에 앉아 대신들을 만나지 않고 궁궐 깊숙한 곳에 머물러서 정사가 모두 조고에게서 결정되었다.


역주
역주1 18-3-가 : 《史記》 권87 〈李斯列傳〉, 《資治通鑑》 권8 〈秦紀3 二世皇帝下〉 2년(기원전 208) 가을 8월 조에 보인다.
역주2 天子……曰朕 : ‘朕’은 秦 始皇이 재위 26년(기원전 221)에 천하를 통일한 뒤 조서를 내려, ‘나’라는 의미로 귀천에 상관없이 통용했던 호칭을 제왕의 자칭에만 쓸 수 있도록 한 호칭이다. 본래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의 ‘조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기 때문에 조고가 견강부회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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