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대학연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原注
2-1-나1(朱)
朱熹
朱熹가 말하였습니다.
上古聖 繼天立極而道統之傳 有自來矣
“상고시대에 성스럽고 神明한 이가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법칙을 세우면서 道統의 전함이 유래가 있게 되었다.
其見於經則允執厥中者 堯之所以授舜也 人心惟危‧道心惟微‧惟精惟一‧允執中者 舜之所以授禹也
그 내용이 經文에 보이는 것으로 ‘允執厥中’은 堯임금이 舜임금에게 전하여준 것이고,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은 순임금이 禹王에게 전하여준 것이다.
堯之一言 至矣盡矣어시늘 而舜 復益之以三言者以明夫堯之一言 必如是而后 可庶幾也
요임금의 한 마디 말이 지극하고 다하였는데도, 순임금이 다시 세 마디 말을 더한 것은 요임금의 한 마디 말을 반드시 이와 같이 한 뒤에야 그 실현을 기대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原注
夫心之 一而已矣로되 而以爲有人心道心之異者 以其或生於形氣之私하며 或原於性命之正이라 而所以爲知覺者 不同하니
虛靈知覺한 마음은 하나일 뿐인데 人心과 道心의 다름이 있다고 한 것은, 어떤 것은 形氣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나고 어떤 것은 性命의 올바름에서 근원하여, 知覺을 한 것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是以或危殆而不安하며 或微妙而難見爾니라
그러므로 어떤 것은 위태로워 안정되지 못하고, 어떤 것은 미묘하여 보기 어렵다.
然人莫不有是形이라 故雖라도 不能無人心하고 亦莫不有是性이라 故雖라도 不能無道心하니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이 形을 가지고 있으므로 上智라 할지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고, 누구나 性을 가지고 있으므로 下愚라 할지라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
二者 雜於方寸之間而不知所以治之 則危者 愈危‧微者 愈微하여 而天理之公 卒無以勝人欲之私矣리라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 뒤섞여 있어서, 다스릴 줄 모르면 위태로운 인심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은미한 도심은 더욱 은미해져서, 공변된 天理가 마침내 사사로운 人欲을 이길 수 없게 될 것이다.
原注
精則察夫二者之間而不雜也 一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
정밀하게 살피면 인심과 도심의 둘 사이를 살펴 뒤섞이지 않게 되고, 전일하게 지키면 그 本心의 올바름을 지켜서 벗어나지 않게 된다.
從事於斯하여 無少間斷하면 則道心 常爲一身之主而人心 每聽命焉이니
여기에 매진하여 잠시도 끊어짐이 없게 되면 도심이 항상 한 몸의 주인이 되어 인심이 늘 도심의 명령을 따르게 된다.
則危者 安‧微者 著而動靜云爲 自無過不及之差矣리라
그렇게 되면 위태로운 인심은 안정되게 되고 은미한 도심은 드러나게 되어, 동할 때와 고요할 때나 말할 때와 행하는 때에 저절로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잘못이 없게 될 것이다.
夫堯‧舜‧禹 天下之大聖也 以天下相傳 天下之大事也 以天下之大聖으로 行天下之大事하사대 授受之際 丁寧告戒 不過如此하니 則天下之理 豈有以加於此哉리오
저 요임금‧순임금‧우왕은 천하의 큰 聖人이고, 천하를 서로 전해주는 것은 천하의 큰일이니, 천하의 큰 성인으로 천하의 큰일을 행하면서, 서로 전해주고 전해 받을 때에 간곡하게 일러주고 경계함이 이와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천하의 이치가 어찌 이보다 더할 것이 있겠는가.”
역주
역주1 2-1-나1(朱) : 《中庸章句》 〈序〉에 보인다.
역주2 : 사고본에는 ‘人’으로 되어 있다.
역주3 : 사고본에는 ‘其’로 되어 있다.
역주4 : 대전본‧사고본에는 ‘欲’으로 되어 있다.
역주5 虛靈知覺 : 《中庸章句》 〈序〉에 보인다. 《書經》 〈大禹謨〉의 “人心惟危 道心惟微”에 대한 《書集傳》의 注에 “心은 사람의 지각이니, 中에 主宰하여 밖에 응하는 것이다.[心者 人之知覺 主於中而應於外者也]”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陳師凱의 《書蔡氏傳旁通》 卷1下 〈大禹謨〉의 설명을 참조하면, ‘虛靈’은 아직 발현하지 않았을 때의 마음의 體이고 ‘知覺’은 이미 발현하였을 때의 마음의 用이다. 人心이나 道心이나 이미 발현한 마음이기 때문에 ‘知覺’이라고 말하였으면 ‘虛靈’이라고 할 필요가 없지만, ‘中에서 主宰하는 것[主於中]’은 바로 體이기 때문에 ‘虛靈’을 함께 말한 것이다.
역주6 上智 : 《論語》 〈陽貨〉 제3장에 보인다. ‘上等의 지혜를 가진 자[上知]’라는 뜻으로 곧 聖人의 경지를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논어》 〈季氏〉 제9장에서는 사람의 앎의 등급을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生而知之者]’, ‘배워서 아는 자[學而知之者]’, ‘통하지 않아서 배우는 자[困而學之者]’, ‘통하지 않는데도 배우지 않는 자[困而不學者]’의 네 가지로 분류하였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는 상등이 되고, 통하지 않는데도 배우지 않는 자는 하등이 된다.
역주7 下愚 : 《論語》 〈陽貨〉 제3장에 보인다. ‘下愚’는 스스로를 해치는 자[自暴者]와 스스로를 버리는 자[自棄者] 두 종류가 있다. 《孟子》 〈離婁 上〉 제10장에 따르면, 스스로를 해치는 자는 말할 때 예의를 비난하는 자로 善을 거부하고 믿지 않으며, 스스로를 버리는 자는 仁과 義가 좋다는 것은 알면서도 자신은 仁에 처할 수도 없고 義를 행할 수도 없다고 여겨서 행하지 않으므로 ‘下愚’가 된다. 이는 《논어》 〈季氏〉 제9장의 ‘통하지 않는데도 배우지 않는 자[困而不學者]’와 통한다. 위의 주석 ‘上智’ 참조.
역주8 : 《大學章句》 〈序〉에는 이 뒤에 ‘其’가 있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