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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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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4-6-나(按)
4-6-나(按)
按 秦‧漢以後 號爲賢主 修身寡過 則或有之어니와 其知從事於此心하여 懼姦佞之乘其隙 則未有如太宗者하니
【臣按】 秦‧漢 이후에 賢主로 불린 임금들 중에 자신을 수양하여 잘못이 적었던 경우는 간혹 있었으나, 이 마음을 지키는 것에 매진할 줄 알아서 姦佞함이 그 틈을 탈까 두려워했던 사람으로는 태종만한 이가 없습니다.
惟其中 有所主之徒 皆不得而惑하니이다
태종은 오직 마음속에 주관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封德彛‧宇文士及‧權萬紀와 같은 무리가 모두 현혹시킬 수 없었습니다.
然數者 均爲易入而嗜欲 又其最焉이라
그러나 앞에서 든 것들이 똑같이 빠져들기 쉬운 것들이지만 嗜欲은 그중에서도 가장 빠져들기 쉬운 것입니다.
古先聖王 惟此之畏하시니 之所以戒舜也 周公之所以戒成王也
옛 聖王이 오직 이것을 두려워하셨기 때문에 ‘朋淫于家(소인과 붕당을 짓고 집에서 음란한 짓을 자행하였다)’는 禹王이 舜임금에게 경계했던 것이며, ‘無皇耽樂(한가하다고 여겨 즐기자고 말하지 마소서)’은 周公이 成王에게 경계했던 것입니다.
太宗 能嚴姦佞之防호대 而未能脱嗜欲之穽하여 閨門之內 旣多慙德하고狐媚之惑 卒基異時移鼎祚‧翦宗支之禍焉하니
태종이 姦佞함에 대한 방비는 엄하게 하였으나 嗜欲의 구렁에서는 벗어나지 못하여, 가정 내에서 이미 부끄러운 덕이 많았고 武才人이 여우처럼 홀리는 유혹이 마침내 훗날 唐나라의 종사가 바뀌고 李氏 황족들이 살육되는 재앙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蓋由天資之高 有以知夫衆攻之原이로되 而學力之淺 卒無以勝其最甚之害하니
이것은 태종이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 마음을 공격하는 것들의 근원은 알았지만 학문의 공력이 얕아서 마침내 그중 가장 심한 해악을 이기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여기에 미쳤지만 仁은 이것을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原注
근세에 〈心箴〉을 지은 儒生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茫茫堪輿 俯仰無垠이라
아득하고 아득한 天地는茫茫堪輿
굽어보나 우러러보나 끝이 없구나俯仰無垠
人於其間 眇然有身하니

사람은 그 사이에서人於其間
작디작게 몸을 가지고 있으니眇然有身
是身之微 太倉稊米

이 몸이 미미하기가是身之微
太倉의 곡식 낟알과도 같은데太倉稊米
參爲三才 曰惟心耳

참여하여 三才가 된 것은參爲三才
오로지 마음 때문이라네曰惟心耳
往古來今 孰無此心

古今을 통틀어往古來今
어느 누구인들 이 마음이 없겠는가孰無此心
心爲形役이면 乃獸乃禽이라

마음이 肉身의 노예가 되면心爲形役
마침내 禽獸가 된다네乃獸乃禽
惟口耳目 手足動靜

오직 입이며 귀며 눈이며惟口耳目
손발의 일거수일투족이手足動靜
投間抵隙하여 爲厥心病이라

틈새를 파고들어投間抵隙
그 마음의 병통이 되는 것이라네爲厥心病
一心之微 衆欲攻之하니

미미한 하나의 마음을一心之微
여러 가지 욕심이 공격하니衆欲攻之
其與存者 嗚呼幾希

거기서 보존된 것이라고는其與存者
아, 얼마 되지 않는구나嗚呼幾希
君子하여 克念克敬이라

군자는 誠을 보존하여君子存誠
능히 생각하고 공경하기에克念克敬
天君泰然하니 百體從令이라하니

마음이 태연하니天君泰然
온몸이 명령을 따르는 것이라네百體從令
箴雖常言이나 然深切於正心之學이라 故錄焉하노이다

이 箴은 비록 평범한 말이기는 하지만 마음을 바르게 하는 학문에 깊고 절실하기 때문에 여기에 수록하였습니다.
역주
역주1 封德彛 : 568~627. 이름은 倫으로, 德彛는 자이다. 觀州 蓨 사람이다. 隋 文帝 때 內史舍人이 되었으며, 煬帝 때에는 虞世基가 권력을 농단하는 데 협력하여 국정을 그르치다가 宇文化及이 兵變을 일으키자 그에게 붙어 양제를 붙잡아 數罪하였다. 그 후 우문화급이 패망하자 당나라에 항복하여 高祖를 도우며 內史令, 中書令 등을 역임하였으며, 太宗이 즉위한 뒤에는 벼슬이 尙書右僕射에 이르렀다. 사람됨이 교활하고 가식에 능했다. 病死한 뒤에는 司空에 추증되고 明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나, 이후 추탈되고 시호도 繆으로 바뀌었다.
역주2 宇文士及 : ?~642. 자는 仁人으로, 京兆 長安 사람이다. 宇文述의 아들이자 宇文化及의 동생으로, 隋 文帝 때 煬帝의 딸 南陽公主와 혼인하였다. 일찍이 李淵과 교분이 있어 당나라에 항복하고 자신의 누이를 高祖의 后妃로 들였다. 秦王 李世民을 따라 王世充과 竇建德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郢國公에 봉해지고 中書侍郞, 太子詹事가 되었으며, 태종이 즉위한 뒤 中書令에 올랐다. 태종이 궁으로 불러 밀담을 나눌 만큼 각별한 신임을 받았으며, 사람됨이 근실하고 아랫사람을 예로 대하였다. 죽은 뒤 태종의 능인 昭陵에 陪葬되었다. 시호는 孝이다.
역주3 權萬紀 : ?~643. 京兆 萬年 사람이다. 唐 太宗 때 潮州 刺史에서 治書侍御史로 발탁되었다. 공적인 일로 房玄齡‧王珪‧溫彦博 등을 탄핵하자, 태종은 그가 顯貴한 이들에 대해서도 회피하지 않는다 하여 예우하였다. 이후 尙書左丞에 올랐다가 齊王 李祐의 長史가 되었다. 이우가 소인배를 가까이하는 것에 대해 간했다가 훗날 이우에게 살해당했다. 성품이 강직하고 직언을 잘하였다. 시호는 敬이다.
역주4 朋淫于家 : 《書經》 〈虞書 益稷〉에 보인다. 皐陶에게 善言을 들은 舜임금이 禹에게도 善言을 하라고 하자, 우는 여러 가지 경계해야 할 일들을 진언하였다. 蔡沈의 《書集傳》에 따르면 ‘朋淫于家’는 堯임금의 아들 丹朱가 했던 악행 중 하나로, 우는 순임금에게 이러한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다.
역주5 : 대전본‧사고본에는 ‘益’으로 되어 있다.
역주6 無皇耽樂 : 《書經》 〈周書 無逸〉에 보인다. 통행본 《서경》에는 ‘無皇’ 뒤에 ‘曰今日’이 있다. 蔡沈은 《書集傳》에서 “스스로 한가하다고 여겨 ‘오늘은 우선 이 즐거움을 누리자.’라고 말하지 마소서.[毋自寬暇 曰今日姑爲是耽樂也]”라고 풀이하였다.
역주7 武才人 : 則天武后를 가리킨다. 唐 太宗은 637년(貞觀11)에 당시 14살이었던 武氏를 才人으로 삼았다. ‘才人’은 황제의 첩으로 內命婦에 속한다. 삼국시대 魏나라 때 최초로 만들었으며, 唐나라 초에는 9명을 두었다. 《中國官制大辭典 才人》
역주8 智及……守之 : 《論語》 〈衛靈公〉 제32장에 보인다.
역주9 近世……箴者 : 范浚(1102~1150)을 가리킨다. 자는 茂明, 호는 香溪이며 蘭溪 사람이다. 秦檜가 집권하자 벼슬을 마다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문집으로 《香溪集》이 있다.
역주10 : 저본에는 없으나 510본‧512본‧대전본‧사고본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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