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憲宗
이 與宰相
으로 語及神仙
이러시니 이 對曰 秦皇‧漢武學仙之效
가 具載前史
하고
陛下
가 春秋
가 鼎盛
하사 勵志太平
하시니 宜拒絶方士之說
이라 苟道盛德充
하여 人安國理
하면 何憂無堯‧舜之壽乎
注+時元和五六年間.리잇고
元和十三年
에 以山人
로 爲
刺史
하다 上
이 好神仙
하사 詔天下求方士
러시니 이 薦泌
이 能合長
이라한대
泌
이 言
에 多靈藥
하니 誠得爲彼
하면 庶幾可求
라한대
上이 以命泌하시니 諫官이 論奏하여 以爲人主가 喜方士나 未有使之臨民者라한대
上이 曰 煩一州之力而能爲人主致長生이면 臣子가 亦何愛焉이리오 由是로 群臣이 莫敢言하더라
泌이 至台州하여 驅吏民采藥하니 歲餘에 無所得하여 逃入山中이러니 浙東觀察使가 捕送京師어늘
皇甫鎛等
이 保護之
하니 上
이 復使
하시고 服其藥
하시니 日加躁渴
이러시니
起居舍人
이 上言 藥以愈疾
이니 非朝夕常餌之物
이라 況金石
이 酷烈有毒
하고 又益以火氣
하니 殆非五藏
의 所能勝也
라
하니 乞令
藥者
로 先餌一年則眞僞
를 可辨矣
리이다 上
이 怒
하사 貶潾爲江陵令
하시다
上이 服金丹하사 多躁怒하시니 左右宦官이 往往獲罪하여 有死者하니 人人이 自危하더라
十五年正月
에 暴崩
하시니 人
이 謂內侍
弑逆
이라하니라
13-13-가
唐 憲宗이 宰相과 함께 대화하다가 신선 이야기가 나왔는데, 李藩이 대답하였다. “진 시황과 한 무제가 신선술을 배운 결과는 이전의 역사책에 모두 기록되어 있고,
太宗께서는 天竺에서 온 승려가 준 長生藥을 복용하고서 병에 걸리셨으니, 이는 고금의 분명한 警戒입니다.
폐하께서는 춘추가 한창이시어 태평치세를 이룩하는 데 온 마음을 쏟고 계시니, 方士의 말은 거절하셔야 합니다. 진실로 도가 성대하고 덕이 가득하여 백성이 편안하고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면, 어찌 요임금과 순임금처럼 장수를 누리지 못할까 걱정하실 게 있겠습니까.”
注+이때는 元和 5년(810)에서 6년(811) 무렵이었다.
元和 13년(818)에 方士 柳泌을 台州刺史로 임명하였다. 헌종이 신선을 좋아하여 천하에 조서를 내려 방사를 찾았는데, 장생약을 잘 조제한다며 皇甫鎛이 유필을 추천하였다.
그러자 유필이 말하였다. “天台山에 靈藥이 많으니, 만약 그곳의 長官이 될 수 있다면 아마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헌종이 유필을 태주자사에 임명하니, 諫官이 다음과 같이 논하여 아뢰었다. “임금이 방사를 좋아해도 방사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헌종이 말하였다. “州 하나의 백성을 고생시켜 임금을 장생하게 만들 수 있다면, 신하가 또한 무엇을 아까워하겠는가.” 그 뒤로는 신하들 가운데 감히 거론하는 자가 없었다.
유필이 태주에 부임하여 아전들과 백성을 내몰아 약을 채집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1년이 넘도록 아무 소득이 없어서 달아나 산속으로 숨었는데, 浙東觀察使가 그를 체포하여 京師로 압송하였다.
황보박 등이 유필을 두둔하자, 헌종이 다시 그를 待詔翰林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유필이 조제한 약을 복용하자 燥渴症이 날로 더해졌다.
起居舍人 裴潾이 다음과 같이 상언하였다. “약은 질병을 치유하는 것이니 조석으로 常服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더구나 金石은 몹시 강렬하여 독이 있는 데다가 여기에 火氣까지 더하니, 아마도 오장이 견딜 수 있는 게 아닌 듯합니다.
옛날에는 임금이 약을 복용할 때 신하가 먼저 맛을 보았으니, 약을 바치는 자에게 먼저 1년간 먹어보게 하면, 장생약의 진위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헌종이 노하여 배린을 江陵令으로 폄적시켰다.
헌종이 金丹을 복용하여 조급해져서 성을 자주 내는 바람에 측근의 환관들이 자주 죄를 받아 사형에 처해지는 자들이 나오니 사람마다 스스로 두려워하였다.
원화 15년(820) 정월에 헌종이 갑자기 붕어하였다. 사람들은 내시 陳弘志가 헌종을 弑逆한 것이라고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