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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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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憲宗 與宰相으로 語及神仙이러시니 對曰 秦皇‧漢武學仙之效 具載前史하고
13-13-가
唐 憲宗이 宰相과 함께 대화하다가 신선 이야기가 나왔는데, 李藩이 대답하였다. “진 시황과 한 무제가 신선술을 배운 결과는 이전의 역사책에 모두 기록되어 있고,
하시니 古今明戒也
太宗께서는 天竺에서 온 승려가 준 長生藥을 복용하고서 병에 걸리셨으니, 이는 고금의 분명한 警戒입니다.
陛下 春秋 鼎盛하사 勵志太平하시니 宜拒絶方士之說이라 苟道盛德充하여 人安國理하면 何憂無堯‧舜之壽乎注+時元和五六年間.리잇고
폐하께서는 춘추가 한창이시어 태평치세를 이룩하는 데 온 마음을 쏟고 계시니, 方士의 말은 거절하셔야 합니다. 진실로 도가 성대하고 덕이 가득하여 백성이 편안하고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면, 어찌 요임금과 순임금처럼 장수를 누리지 못할까 걱정하실 게 있겠습니까.”注+이때는 元和 5년(810)에서 6년(811) 무렵이었다.
元和十三年 以山人刺史하다 好神仙하사 詔天下求方士러시니 薦泌 能合長이라한대
元和 13년(818)에 方士 柳泌을 台州刺史로 임명하였다. 헌종이 신선을 좋아하여 천하에 조서를 내려 방사를 찾았는데, 장생약을 잘 조제한다며 皇甫鎛이 유필을 추천하였다.
多靈藥하니 誠得爲彼하면 庶幾可求라한대
그러자 유필이 말하였다. “天台山에 靈藥이 많으니, 만약 그곳의 長官이 될 수 있다면 아마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以命泌하시니 諫官 論奏하여 以爲人主 喜方士 未有使之臨民者라한대
헌종이 유필을 태주자사에 임명하니, 諫官이 다음과 같이 논하여 아뢰었다. “임금이 방사를 좋아해도 방사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
曰 煩一州之力而能爲人主致長生이면 臣子 亦何愛焉이리오 由是 群臣 莫敢言하더라
그러자 헌종이 말하였다. “州 하나의 백성을 고생시켜 임금을 장생하게 만들 수 있다면, 신하가 또한 무엇을 아까워하겠는가.” 그 뒤로는 신하들 가운데 감히 거론하는 자가 없었다.
至台州하여 驅吏民采藥하니 歲餘 無所得하여 逃入山中이러니 浙東觀察使 捕送京師어늘
유필이 태주에 부임하여 아전들과 백성을 내몰아 약을 채집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1년이 넘도록 아무 소득이 없어서 달아나 산속으로 숨었는데, 浙東觀察使가 그를 체포하여 京師로 압송하였다.
皇甫鎛等 保護之하니 復使하시고 服其藥하시니 日加躁渴이러시니
황보박 등이 유필을 두둔하자, 헌종이 다시 그를 待詔翰林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유필이 조제한 약을 복용하자 燥渴症이 날로 더해졌다.
起居舍人 上言 藥以愈疾이니 非朝夕常餌之物이라 況金石 酷烈有毒하고 又益以火氣하니 殆非五藏 所能勝也
起居舍人 裴潾이 다음과 같이 상언하였다. “약은 질병을 치유하는 것이니 조석으로 常服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더구나 金石은 몹시 강렬하여 독이 있는 데다가 여기에 火氣까지 더하니, 아마도 오장이 견딜 수 있는 게 아닌 듯합니다.
하니 乞令藥者 先餌一年則眞僞 可辨矣리이다하사 貶潾爲江陵令하시다
옛날에는 임금이 약을 복용할 때 신하가 먼저 맛을 보았으니, 약을 바치는 자에게 먼저 1년간 먹어보게 하면, 장생약의 진위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헌종이 노하여 배린을 江陵令으로 폄적시켰다.
服金丹하사 多躁怒하시니 左右宦官 往往獲罪하여 有死者하니 人人 自危하더라
헌종이 金丹을 복용하여 조급해져서 성을 자주 내는 바람에 측근의 환관들이 자주 죄를 받아 사형에 처해지는 자들이 나오니 사람마다 스스로 두려워하였다.
十五年正月 暴崩하시니 謂內侍弑逆이라하니라
원화 15년(820) 정월에 헌종이 갑자기 붕어하였다. 사람들은 내시 陳弘志가 헌종을 弑逆한 것이라고들 하였다.
역주
역주1 13-13-가 : 李藩이 헌종에게 간한 것은 《資治通鑑》 卷238 〈唐紀54 憲宗 上之下〉 元和 5년(810) 8월 조에 보이며, 헌종이 柳泌을 자사에 임명하고 나서 장생약을 먹고 붕어하기까지의 전말은 권240 〈唐紀56 憲宗 中之下〉 원화 13년(818) 조, 권241 〈唐紀57 憲宗 下〉 원화 14년(819) 조, 권241 〈唐紀57 憲宗 下〉 원화 15년(820) 조에 보인다.
역주2 李藩 : 754~811. 자는 叔翰으로, 趙郡 사람이다. 給事中‧門下侍郞‧同平章事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충성스러워 간언하지 않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황제가 중히 여겼다. 사후에 戶部尙書로 추증되었다.
역주3 太宗……致疾 : 貞觀 연간(627~649) 말엽에 王玄策이 天竺을 평정하고 나서 방사인 那羅邇娑婆寐를 데려왔는데, 이 방사는 스스로 장생하는 방법을 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믿은 태종이 그에게 장생약을 조제하게 하여 복용하였으나 효험은커녕 중병이 들어 명의조차 치료할 방도를 몰랐다. 의논하는 사람들은 나라이사바매를 공개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夷狄들에게 비웃음을 살까 두려워 중지하였다. 《資治通鑑 卷200 唐紀16 高宗 上之下 顯慶 2年, 卷201 唐紀17 高宗 中之上 總章 元年》
역주4 柳泌 : ?~820. 唐나라 때의 方士이다. 본래의 성은 楊이며, 본명은 仁力으로, 헌종 元和 연간에 皇甫鎛과 李道古의 추천으로 궁중을 드나들었다. 元和 13년(818)에 台州刺史로 임명되어 장생약을 찾았으나 구하지 못하고 산속으로 도주하였다가 京師로 압송되었다. 이윽고 待詔翰林이 되어 헌종에게 약을 헌상하였다. 헌종이 이 약을 먹고 포악해져 환관에게 살해되었는데, 穆宗이 즉위한 뒤에 유필은 京兆府에 부쳐져 杖殺되었다.
역주5 台州 : 唐 高祖 武德 5년(622) 海州를 고쳐 설치한 것으로 治所는 臨海縣이었으며, 현재 浙江省의 臨海市‧台州市‧天台縣‧仙居縣‧寧海縣‧象山縣‧三門縣‧溫嶺縣 등지를 관할하였다. 《中國歷史地名大辭典 台州》
역주6 皇甫鎛 : ?~?. 涇州 臨涇 사람으로, 德宗 貞元 연간에 進士가 되어 戶部侍郞을 역임하였다. 憲宗이 蔡를 정벌하려고 할 때 황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군대를 지원한 공으로 同門下平章事가 되었으나 원성이 자자하였다. 穆宗이 즉위하자 崖州司戶參軍으로 폄적되었다.
역주7 生藥 : 대전본에는 小字로 誤刻되어 있다.
역주8 天台 : 天台山을 가리킨다. 당시 台州에 속해 있었으며, 현재 浙江省 天台縣 북쪽에 있다. 《中國歷史地名大辭典 天台山》
역주9 長吏 : 長官과 같은 말로, 상급 관원이나 주요 직책을 맡은 관원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刺史를 가리킨다. 《漢語稱謂大詞典 長吏, 長官》
역주10 待詔翰林 : 待詔는 황제의 부름을 받아 수시로 대기하면서 顧問에 대비하는 사람을 가리켰다. 후에는 음률이나 本草 등과 같이 특정한 장기를 가진 사람도 대조가 되었는데, 당나라 때에 오면서 文辭나 經學, 또는 의술이나 占卜에 능한 사람들도 翰林院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대조가 되기도 하였다. 待詔翰林은 翰林待詔라고도 한다. 《中國歷史大辭典 待詔》 《兩唐書辭典 待詔翰林, 翰林待詔》
역주11 裴潾 : ?~838. 絳州 聞喜 사람으로, 門蔭을 통해 출사하여 左補闕‧起居舍人 등을 지냈다. 憲宗이 方士를 좋아하는 것을 두고 간하다가 江陵令으로 폄적되었는데, 穆宗이 즉위하자 도로 불러들였다. 이후 刑部郎中‧給事中‧兵部侍郞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敬이다.
역주12 古者……嘗之 : 《禮記》 〈曲禮 下〉에 “임금이 병이 들어 약을 마실 때에는 신하가 먼저 맛을 보며, 어버이가 병이 들어 약을 마실 때에는 자식이 먼저 맛을 본다.[君有疾 飮藥 臣先嘗之 親有疾 飮藥 子先嘗之]”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13 : 사고본에는 ‘餌’로 되어 있다.
역주14 陳弘志 : ?~835. 당 헌종 때의 환관으로, 《新唐書》에 따르면 元和 15년(820) 정월 27일에 환관 王守澄과 공모하여 中和殿에서 헌종을 암살한 뒤 대외적으로는 헌종이 갑작스럽게 붕어하였다고 공포했다 한다. 후에 穆宗을 옹립하였으며, 文宗 때 山南東道 監軍으로 있던 중 李訓에 의해 살해되었다. 《新唐書 卷208 王守澄傳》 《資治通鑑 唐紀61 文宗 中 太和 9年》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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