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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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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9-10-나(按)
故前殺三子하고 後傾忠王 凡皆爲壽王地也어늘 幸明皇之 堅定不移하나
19-10-나(按)
[臣按] 李林甫가 재상이 된 것은 武惠妃의 조력에 힘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서 세 황자를 죽이고 뒤에 忠王을 거꾸러뜨리려 한 것은 모두 壽王의 입지를 위해서였는데 다행히 明皇의 뜻이 굳게 정해져 바뀌지 않았습니다.
然猶하여 必欲動揺而後已하니 蓋肅宗之立 出於上意 已不得攘以爲功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임보는 세 차례 큰 옥사를 일으켜 태자를 기필코 흔들어 거꾸러뜨린 뒤에야 그만두고자 하였습니다. 또 이는 肅宗의 즉위가 현종의 뜻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미 가로채서 공으로 삼을 수 없었고
壽王 立則己與惠妃中外相倚하여 富貴 可以長保 林甫之賊心 如此호대 幸肅宗 無過可指而東宮之位 不揺하여
수왕이 즉위하면 자신이 무혜비와 안팎에서 협력하여 부귀를 오랫동안 보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임보의 흉계가 이와 같았지만 다행히 숙종이 지적할 만한 잘못이 없어서 동궁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異時 中興帝室하여 卒有賴焉하니 殆天意相唐하여 使林甫之計 獨弗售于此也 不爾 殆哉러니이다
그리하여 훗날 唐나라를 중흥시켜 마침내 당나라의 국운이 보존된 것이 이에 도움을 입게 되었으니, 아마도 하늘의 뜻이 당나라를 도와서 이임보의 흉계가 유독 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행해지지 않도록 하였던 듯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나라는 위태로웠을 것입니다.
역주
역주1 林甫……助也 : 19-5-가 참조.
역주2 : 사고본에는 ‘志’로 되어 있다.
역주3 三興大獄 : 天寶 5년(746) 태자 李亨의 비 韋氏의 오빠인 韋堅의 옥사, 姬妾 杜良娣의 부친인 杜有隣와 柳勣의 옥사, 천보 5년에 태자와 교분이 두터웠던 河西‧隴右 절도사 王忠嗣의 옥사를 일컫는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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