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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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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人 美麗自喜러니 召與語하시고 拜爲黃門郞하시니
24-3-가
斷袖:침상에서 누워 자는 董賢을 깨우지 않으려 자신의 소매를 자르는 漢 哀帝斷袖:침상에서 누워 자는 董賢을 깨우지 않으려 자신의 소매를 자르는 漢 哀帝
漢 哀帝 때 郞官 董賢은 외모가 수려하여 저절로 호감을 샀는데, 애제가 그를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黃門郞으로 임명하였다.
繇是始幸하여 出則參乘하고 入御左右하니 旬月間 賞賜 累鉅萬이요 貴震朝廷하더라
이로 말미암아 동현이 비로소 총애를 받아 출행할 때에는 황제가 타는 수레에 같이 타고 들어와서는 애제를 곁에서 모시니, 한 달도 되지 않은 사이에 상으로 하사받은 것이 수백만 錢이나 되었으며 존귀함이 조정을 진동시켰다.
柔和便辟하여 善爲媚以自固하여 每賜 不肯出하고 常留中視醫藥이라
동현은 성품이 유순하고 남의 비위를 잘 맞추어 아첨을 잘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였다. 그리하여 애제가 휴가를 내릴 때마다 동현이 궁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고 늘 궁중에 머무르며 의약을 살폈다.
하여 爲起大第하니 木土之功 窮極技巧하고 下至僮僕 亦受上賜하고
애제가 將作大匠에게 詔書를 내려 동현을 위해 큰 저택을 지어주니 토목공사에 기교를 극도로 다하였으며, 아래로 동현의 僮僕들에 이르기까지 역시 애제의 하사품을 받았다.
禁兵 珍寶 其選物上第 盡在董氏所服 迺其副也러라
그리고 武庫에 있던 황제의 전용 무기와 궁중의 진귀한 보물에 이르기까지 선택된 물건 중 최상급의 것은 모두 董氏 일가에 있었으며, 황제가 사용하는 기물들은 바로 그 다음 등급의 것이었다.
또 동현을 高安侯로 봉하였는데, 후에 또 大司馬‧衛將軍으로 임명하니 이때 동현의 나이가 22세였다. 동현이 비록 三公이 되었으나 늘 궁중에서 사무를 처리하며 尙書의 업무를 총괄하니 백관들이 동현을 통하여 나랏일을 상주하였다.
커시늘 하신대 卽日自殺하고 家屬 徙合浦하고 縣官 斥賣董氏財하니 凡四十三이러라
애제가 붕어하자 태후가 冊書를 내려 동현을 파면하였는데, 동현이 그날로 자살하고 그의 家屬들을 合浦로 강제 이주시켰으며 官府에서 동씨 일가의 재산을 내어다 매각하니 총 43만 錢이었다.
역주
역주1 24-3-가 : 《前漢書》 卷93 〈佞幸傳 董賢〉, 《資治通鑑》 卷34 〈漢紀26 哀帝 中〉 建平 4년(기원전 3), 卷35 〈漢紀27 哀帝 下〉 元壽 1년(기원전 2), 元壽 2년(기원전 1) 조에 보인다.
역주2 漢哀帝 : 22-13-가1 ‘漢哀帝’ 주석 참조.
역주3 董賢 : 기원전 22~기원전 1. 漢 哀帝의 총신이다. 자는 聖卿으로, 雲陽 사람이다. 董恭의 아들로, 成帝 때 太子舍人이 되었다. 애제가 즉위한 후 郎官이 되었고, 외모로 애제의 총애를 받아 黃門郞, 駙馬都尉侍中이 되었다. 애제와 늘 함께 있으면서 같은 침상을 썼으며, 애제가 그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그의 몸에 눌린 소매를 잘라내기까지 한 적이 있어 ‘斷袖’라는 말이 생겨났다. 벼슬이 大司馬‧衛將軍에 이르렀으나, 애제가 죽은 후 王莽의 농간으로 대사마의 印綬가 몰수되자 두려움을 느끼고 아내와 함께 자살하였다. 이후 일가가 몰락하였으며, 왕망이 그가 죽은 척했다고 의심하여 관이 파헤쳐지고 檢驗이 끝난 뒤에는 시신이 감옥 안에 묻혔다.
역주4 洗沐 : 漢나라 때 관원들에게는 정기적으로 5일에 한 번씩 휴가가 주어졌는데, 이를 洗沐, 또는 休沐이라고 하였다. 《初學記 卷20》 《宋杰, 漢代官吏的休假制度, 北京師範學院學報, 1986, 67쪽.》
역주5 : 사고본에는 ‘浴’으로 되어 있다.
역주6 詔將作爲起大第 : 《前漢書》 〈董賢傳〉에 따르면, 이때 北闕 곁에 동현의 저택을 지으면서 前殿과 後殿을 두고 문의 크기도 궁궐의 크기로 만들었다. 안사고에 따르면, 이러한 것은 천자의 제도를 僭用한 것이었다. 《前漢書 卷93 佞幸傳 董賢 顔師古注》
역주7 將作 : 《前漢書》 〈董賢傳〉에 따르면, 여기에서는 將作大匠을 가리킨다. 顔師古에 따르면 ‘將作’은 將領으로서 건축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동현의 저택을 지을 당시에는 동현의 장인이 장작대장으로 있었다. 《前漢書 卷93 佞幸傳 董賢, 卷99下 王莽傳 顔師古注》
역주8 武庫 : 前漢 때 무기를 저장하던 창고 이름으로, 未央宮과 長樂宮 사이에 있었다. 《漢書辭典 武庫》
역주9 上方 : 胡三省에 따르면 禁中, 즉 궁중을 가리킨다. 《資治通鑑 卷34 漢紀26 哀帝 中 建平 4年 胡三省注》
역주10 乘輿 : 여기에서는 천자를 가리킨다. 乘輿는 본래 천자가 타는 수레를 가리키는데, 존귀한 천자를 직접 가리켜 말할 수 없으므로 승여가 천자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獨斷 上》 《後漢書 卷5 孝安帝紀 李賢注》
역주11 又封賢爲高安侯 : 建平 4년(기원전 3) 8월의 일이다. 《資治通鑑 卷34 漢紀26 哀帝 中 建平 4年》
역주12 後又……十二 : 元壽 1년(기원전 2) 12월 6일의 일이다. 《資治通鑑 卷35 漢紀27 哀帝 下 元壽 1年》
역주13 三公 : 漢 武帝 이후 前漢 때에는 大司徒, 大司馬, 大司空을 가리킨다. 《漢書辭典 三公》
역주14 給事中領尙書 : 胡三省은 “궁중에서 사무를 처리하면서 상서의 업무를 총괄하는 것이다.[給事禁中而領尙書事也]”라고 설명하였다. 《資治通鑑 卷35 漢紀27 哀帝 下 元壽 1年 胡三省注》
역주15 哀帝崩 : 元壽 2년(기원전 1) 6월 26일에 애제가 未央宮에서 붕어하였다. 《資治通鑑 卷35 漢紀27 哀帝 下 元壽 2年》
역주16 太后冊免賢 : 太后는 王莽의 고모이자 漢 元帝의 황후인 太皇太后 王政君을 가리킨다. 《前漢書》 〈董賢傳〉에 따르면, 왕망이 謁者를 시켜 궁궐에 있던 동현에게 태후의 명의를 사칭한 책서를 보내 면직시킨 것이다. 《前漢書 卷93 佞幸傳 董賢》
역주17 : 대전본‧사고본에는 이 뒤에 ‘萬’ 1자가 더 있다. 服虔에 따르면, ‘萬萬’은 억이다. 따라서 이 두 판본에 따르면, 동현의 재산을 매각한 액수는 43억 錢이 된다. 《前漢書 卷24上 食貨志 上 顔師古注》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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