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묘진경苗晉卿이 숙종肅宗과 대종代宗 때에 별달리 기록할 만한 공적은 없으나 또한 근실하고 공손하여 당시에 칭송을 받았습니다.
비록 황제의 붕어로 인해 잠시 섭총재攝冢宰의 자리에 있기는 하였으나 군무軍務와 국정을 관장하는 위엄과 권세가 애초에 그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았으니, 어찌 감히 경솔하게 신하로서 할 수 없는 말을 입 밖에 내었겠습니까.
여러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이 제왕들과 똑같았던 것은 아마도 또한 우연히 그런 것이어서 반드시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조요趙堯와 이순李舜이 당시에 반역을 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으며, 왕망王莽과 조조曹操는 전대前代의 제왕에게서 이름을 가져다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참소하는 자들이, 옛 제왕과 이름이 같다는 것을 가지고 묘진경을 무함하였으니 억울하다고 할 만합니다. 만약 육지의 변론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화를 면하였겠습니까.
그러나 묘찬苗粲 등이 비록 다행히 목숨을 보전했다고는 하나 덕종德宗의 의심이 끝내 다 풀리지는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덕종을 어두운 군주로 보는 이유입니다.
原注
우리 송나라 인종仁宗 때 송교宋郊가 명유名儒라 하여 등용되자, 참소하는 자가 “성은 국호에 부합하고 이름은 하늘의 교제郊祭에 대응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송교가 스스로 편안히 여기지 못하고 이름을 송상宋庠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인종은 일찍이 송교를 의심하지 않고 재상으로 명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성군聖君으로 보는 이유일 것입니다. 뒤에 참언을 미워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인종을 법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