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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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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 武帝 학문
武帝卽位하사之士하실새 制曰
欲聞大道之要 至論之極하노라
對曰
勉學問이면 則聞見 博而知益明하고 勉行道 則德日起而大有功하리이다


무제武帝의 학문
3-5-가
무제武帝가 즉위하여 현량방정賢良方正문학文學의 선비를 선발할 때 다음과 같은 명을 내렸다.
“짐이 대도大道의 요체와 지론至論의 기준을 듣기 원하노라.”
董仲舒가 대답하였다.
“학문에 힘쓰시면 견문이 넓어져서 지혜가 더욱 밝아지고, 의 실천에 힘쓰시면 이 날로 함양되어 크게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역주
역주1 3-5-가 : 《漢書》 卷56 〈董仲舒傳〉에 보인다.
역주2 賢良文學 : 漢代의 인재 선발 방법 중 하나였던 察擧의 과목을 이른다. 漢代에는 인재 선발에 있어 이전의 軍功이나 養士와 같은 방법이 아닌 察擧‧辟署‧徵聘‧薦擧‧雜途와 같은 방법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였는데, 이 가운데 察擧는 漢代의 가장 중요한 인재 선발 방법으로, 孝廉‧茂才(秀才)‧賢良方正‧文學 및 明經‧明法‧治劇‧武猛 등의 과목이 있었다. 賢良方正은 武帝 元光 원년(기원전 134) 5월의 조서에 따르면, ‘賢良은 고금 王事의 政體에 밝은 자[賢良明于古今王事之體]’로 황제를 도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이르며, 方正은 정직과 덕망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을 이른다. 文帝 2년(기원전 178)과 15년(기원전 165)에 조서로 賢良方正을 추천하도록 한 것이 최초이다. 擧主는 郡國의 守相이나 조정의 대신들이었으며 대체로 災異 뒤에 천거 조서가 내려졌다. 文學은 經學的 소양을 갖춘 선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즉 전대 聖人의 학문을 익힌 자를 이른다. 文學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방법은 武帝 元光 5년(기원전 130)에 公孫弘을 文學으로 부르면서 정식으로 시작되어 宣帝 元康 원년(기원전 65)까지 66년간 지속되었다. 보통 한 번에 백 명 내외로 선발하였다. 추천은 郡國의 천거로 이루어졌다. 《陳蔚松, 漢代考選制度, 武漢 : 崇文書局, 2003, 8‧34~41쪽》
역주3 董仲舒 : 기원전 179~기원전 104. 信都 廣川 사람이다. 어려서 《春秋》를 익혔다. 景帝 때 博士가 되었다. 武帝 때 賢良對策에 응하여 百家를 罷黜하고 儒術만을 존숭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무제의 채납을 받아 정통 학술로서의 儒學의 지위를 확립했다. 江都相‧膠西王相을 지냈다. 후에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저술에 전념하였다. 그 학문은 유학을 중심으로 陰陽五行 사상을 받아들여 天道와 人事가 감응된다는 天人感應說을 주창하였다. 저술로는 《春秋繁露》 등이 있다.
역주4 : 대전본에는 ‘强’으로 되어 있다.
역주5 : 대전본에는 ‘强’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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