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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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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4-2-나(按)
按 齊宣王 旣慕‧文하고 而公孫丑 復慕管‧晏하니 蓋覇者功利之說 深入人心하여 爲日已久
故不惟時君 慕之 而學者 亦慕之也 孟子 引曾西之言하여 以折之하시니 蓋子路 雖不及有爲 而其所學 固聖賢之大學也어니와
若管仲之已試則 專任之四十餘年이로되 其所成就 不過國富兵彊而已
故雖曾西라도 不屑爲之하시니 其肯與之匹乎
原注
先儒楊時 有曰 라하시니 使其見於施爲라도 如是而已
其於合諸侯하며 天下 固有所不逮也 然則曾西 推尊子路而羞比管仲者 何哉
譬之御者컨대 子路則者也 管仲之功 라하니 斯言 盡之로소이다
使孟子當路于齊則必行王者之道 其以齊 信猶反掌之易也
原注
或謂 晏子 於齊 固無功烈之足言이어니와 若管仲者 하시니
孟子 學於孔子者也 何其言之異耶 曰 孔子之稱 稱其攘夷狄而尊中夏也 孟子所譏 譏其舍王道而用覇術也 所指 固不同矣
然孔子 雖稱其功이나 固未嘗略하시니
況世變日下 使孟子而不復議其舍王用覇之罪 則人將然趨於覇矣리니 波流滔滔 孰從而反之邪
以此坊民이라도 商鞅‧申不害之流 猶以詐力彊國而甘處於覇之下者하니이다


原注
14-2-나()
[신안臣按] 제 선왕齊 宣王이 이미 제 환공齊 桓公진 문공晉 文公을 선망하였고 공손추가 또 관중管仲안자晏子를 선망하였으니, 패자霸者공리功利에 대한 설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숙이 파고들어가 그 시일이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임금만 선망한 것이 아니라 학자도 선망하였는데 맹자는 증서曾西의 말을 인용하여 이를 꺾어버렸습니다. 자로가 비록 큰일을 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였으나 그가 배운 것은 본래 성현의 대학大學이었습니다.
그러나 관중이 등용된 것으로 말한다면 제 환공이 그에게 40여 년 동안 일임하였는데도 그 성취가 부국강병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것이 공자孔子의 문하에서 오패五霸에 대해 거론하기를 부끄럽게 여겼던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증서라 할지라도 관중처럼 되기를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맹자는 삼성三聖의 후계자를 자처하였으니, 관중과 비견되기를 달가워했겠습니까.
原注
선유 양시先儒 楊時가 말하기를, “공자가 자로의 재능을 두고 말하기를, ‘천승지국千乘之國에서 그 군대를 다스리게 할 만하다.’라고 하였으니, 설령 그 재능은 행동으로 나타났더라도 이와 같았을 따름이다.
관중이 제후들을 규합하고 천하를 한번 바로잡은 데 있어서는 진실로 따라가지 못할 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증서가 자로는 추중하여 높이고 관중에는 비견되기를 부끄러워했던 것은 어째서인가?
수레를 모는 자에 비유한다면 자로는 자신의 말 모는 방식을 규범에 맞게 하여 짐승을 잡지 못한 자이고, 관중의 공은 규범에 맞지 않게 수레를 몰아 짐승과 만나게 하여 짐승을 잡은 격이다.” 라고 하였으니, 이 말에서 모두 설명하였습니다.
만약 맹자가 제나라에서 요직을 맡았다면 틀림없이 왕자王者의 도를 행했을 것이니, 맹자가 제나라를 가지고 왕도王道를 행하는 것은 참으로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웠을 것입니다.
原注
혹자는 말합니다. “안자晏子나라에 있어서 본래 언급할 만한 공렬功烈이 없었지만, 관중 같은 사람은 공자가 일찍이 ‘누가 그의 만 하겠는가.’라고 칭찬하였습니다.
맹자는 공자를 배운 사람인데 어쩌면 그렇게 말이 다르단 말입니까.” 공자의 칭찬은 관중이 이적夷狄을 배격하고 중화中華를 존숭한 것을 칭찬했던 것이며, 맹자가 기롱했던 바는 그가 왕도를 버리고 패도를 사용한 것을 기롱한 것이니, 가리키는 대상이 본래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가 비록 그의 공은 칭찬하였으나 기국이 작다는 기롱과 를 모른다는 기롱을 본래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세도世道는 날마다 낮은 데로 변하고 있는데 만약 맹자가 왕도를 버리고 패도를 사용한 관중의 죄를 더 이상 논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패도로 휩쓸리듯이 달려갔을 것이니, 거칠 것 없는 기세를 어느 누가 따라서 되돌리겠습니까.
이로써 백성들이 패도로 달려가는 것을 막았음에도, 상앙商鞅신불해申不害의 부류는 오히려 속임수와 무력으로 나라를 강성하게 하여 패도보다도 못한 수준에 머물기를 달가워했던 자들입니다.


역주
역주1 : 대전본에는 ‘威’로 되어 있으나, 宋 欽宗 趙桓을 피휘한 것이다.
역주2 : 대전본에는 ‘威’로 되어 있으나, 宋 欽宗 趙桓을 피휘한 것이다.
역주3 孔氏之門所羞稱 : 14-5-가 참조.
역주4 孟子……自任 : 三聖은 禹王‧周公‧孔子를 가리킨다. 《孟子 滕文公 下》
역주5 孔子……禽爾 : 《孟子集註》 〈公孫丑 上〉 제1장에 보인다.
역주6 千乘……賦也 : 《논어》 〈公冶長〉 제7장에 보인다.
역주7 : 주희는 《춘추좌씨전》 僖公 26년 기사에 있는 ‘糾合諸侯’에 근거하여 九를 ‘督(감독하다)’으로 풀이하였다. 《論語諺解》에는 九의 음을 ‘규’라고 하였다. 《論語集註 憲問》
역주8 一匡天下 : 《논어》 〈憲問〉 제18장에 “管仲이 齊 桓公을 보필함으로써 제후의 霸者가 되게 하여 한 번 천하를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은택을 입고 있으니, 관중이 없었으면 우리는 아마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깃을 왼편으로 여미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管仲相桓公 霸諸侯 一匡天下 民到於今受其賜 微管仲 吾其被髮左衽矣]”라는 공자의 말이 보인다.
역주9 : 대전본에는 ‘正’으로 되어 있으나, 宋 太祖 趙匡胤을 피휘한 것이다.
역주10 範我馳驅而不獲 : 《맹자》 〈滕文公 下〉 제1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옛날에 趙簡子가 王良에게 寵臣 奚와 수레를 타고 사냥을 하게 했는데 하루 종일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러자 奚는 조간자에게 왕량이 천하의 형편없는 마부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이 말을 왕량에게 전해주자 왕량이 다시 한 번 해보겠다고 하고서 다시 奚와 사냥을 나갔다. 그 결과 하루아침에 짐승 열 마리를 잡았다. 이에 奚가 조간자에게 왕량이 천하의 뛰어난 마부라고 하였다. 조간자가 왕량에게 奚와 수레 타는 일을 맡으라고 했으나 왕량은 거절하면서 “제가 奚를 위해 말 모는 방식을 규범에 맞게 했더니 하루 종일 한 마리도 못 잡았고 그를 위하여 규범에 맞지 않게 수레를 몰아 짐승과 만나게 해주었더니 하루아침에 열 마리를 잡았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말 모는 규범을 벗어나지 않자 화살을 쏘는 것이 부술 듯하였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소인배와 수레를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니 사양하렵니다.’[吾爲之範我馳驅 終日不獲一 爲之詭遇 一朝而獲十 詩云 不失其馳 舍矢如破 我不貫與小人乘 請辭]”라고 말하였다. 인용된 시는 《시경》 〈小雅 車攻〉에 보인다.
역주11 詭遇而獲禽 : 위의 ‘範我馳驅而不獲’ 주석 참조.
역주12 孔子……稱之 : 《논어》 〈憲問〉 제17장에 “齊 桓公이 제후들을 糾合하되 무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으니, 누가 그의 仁만 하겠는가. 누가 그의 인만 하겠는가.[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라는 공자의 말이 보인다.
역주13 器小……之譏 : 《논어》 〈八佾〉 제22장에 “관중의 器局이 작구나![管仲之器小哉]”, “나라의 임금이라야 門屛으로 대문을 가릴 수 있는데 관중도 문병으로 대문을 가렸으며, 나라의 임금이라야 두 임금이 우호로 만날 때 反坫을 둘 수 있는데 관중도 반점을 두었으니,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모르겠는가.[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라는 공자의 말이 보인다.
역주14 : 사고본에는 ‘廢’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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