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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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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9-14-나(按)
按 戰國之君 以爵祿奔走士大夫하여 無復遇臣之禮하고 其臣 亦懷利苟從하여 無復事君之忠이라
9-14-나(按)
[臣按] 전국시대의 임금들은 爵祿으로 사대부들을 달려오게 하여 더 이상 신하를 대우하는 禮가 없었고, 그 신하들도 이익만 생각하고 구차하게 따라서 더 이상 임금을 섬기는 충성심이 없었습니다.
故孟子 以此深警齊王也니이다 古與잇가
그러므로 맹자가 이러한 말로 제 선왕을 깊이 경계한 것입니다. 옛날에 魯 穆公이 子思에게 “舊君을 위하여 反服을 입는 것이 옛날의 禮입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子思 曰 古之君子 進人以禮하고 退人以禮 故有舊君反服之禮也러니
그러자 자사는 “옛날의 위정자는 사람을 예로써 등용하고 사람을 예로써 파면했기 때문에 구군을 위하여 反服을 입는 예가 있었습니다.
今之君子 進人 若將加諸膝하고 退人 若將諸淵하니 毋爲戎首 不亦善乎 又何反服之有리오하시니
그런데 지금의 위정자는 사람을 등용할 때에는 무릎에 올려둘 것처럼 하다가도 사람을 파면할 때에는 깊은 연못에 빠뜨릴 것처럼 하니, 병란의 수괴가 되지 않는 것으로도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무슨 反服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으니,
孟子之告齊王 卽子思之告穆公者也 然其辭 益峻切矣 컨대 可以見聖賢氣象之分이라
맹자가 제 선왕에게 일러준 것은 바로 자사가 노 목공에게 일러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더욱 준절하였으니, 앞 장에 나왔던 공자의 말과 비교해보면 성인과 현인의 기상이 구분됨을 알 수 있습니다.
原注
雖然이나 孟子 爲齊王言則然也로되 而所以自處則不然也하사
비록 그렇지만 맹자가 제 선왕을 위하여 했던 말은 그러하였으나, 스스로 처신한 것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千里見王하여 不遇
故去而三宿出晝注+齊邑名.하사 未嘗有悻悻之心하여 猶幸王之一
而追己也하시니
그리하여 천 리 길을 가서 왕을 만나고도 뜻이 맞지 않기 때문에 제나라 도성을 떠났으나 3일 밤을 묵고 晝邑을 떠나注+‘晝’는 齊나라의 읍 이름이다. 노여운 마음을 품은 적이 없었고 오히려 왕이 한 번 깨닫고 자신을 뒤쫓아 오기를 바랐으니,
曷嘗以寇讎 視其君哉시리오 故曰 孟子 爲齊王言則然이로되 而所以自處則不然也라하노이다
어찌 자신의 임금을 원수로 본 적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맹자가 제 선왕을 위하여 했던 말은 그러하였으나, 스스로 처신한 것은 그러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以上 總言君臣交際之禮
이상은 군신간에 교제할 때의 禮를 총괄하여 말하였다.
역주
역주1 穆公……之有 : 《예기》 〈檀弓 下〉에 보인다. ‘又何反服之有’는 통행본 《예기》에 ‘又何反服之禮之有’로 되어 있다.
역주2 爲舊君反服 : 反服은 舊君의 나라로 돌아와 입는 복을 말한다. 이때 입는 복은 齊衰 3개월 복이다. 9-14-가의 ‘如此則爲之服矣’ 주석 참조.
역주3 : 대전본에는 ‘隊’로 되어 있다.
역주4 揆諸……之言 : 9-13-가 참조.
역주5 故去……己也 : 《맹자》 〈公孫丑 下〉 제12장에 보인다. 맹자는 齊나라 왕과 뜻이 맞지 않아 그를 떠나 제나라 서남쪽에 있는 晝邑에서 사흘을 유숙한 뒤에 떠났다. 그가 제나라 사람인 尹士에게 전한 말 중에, “천 리 길을 와 왕을 만나러 왔던 것은 내가 원해서 그런 것이니, 뜻이 맞지 않아서 떠나가는 것이 어찌 내가 바라던 바이겠는가. 내가 부득이해서였다. 내가 사흘을 유숙한 뒤에 晝邑을 떠났지만, 내 마음에는 오히려 빠르다고 여겼다. 나는 왕이 고치기를 바라니, 왕이 만일 고친다면 틀림없이 나를 돌아오게 했을 것이다. 주읍을 떠나는데도 왕이 나를 뒤쫓아 오지 않기에, 내가 그런 뒤에야 아무 미련 없이 돌아갈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비록 그렇다고 해도 어찌 왕을 버리겠는가. 왕은 그래도 충분히 선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왕이 만일 나를 등용하신다면, 어찌 다만 제나라 백성만 편안할 뿐이겠는가. 천하 백성이 모두 편안할 것이다. 왕이 고치기를, 나는 날마다 바란다. 내가 어찌 이 졸장부처럼 자기 임금에게 간하다가 수용해주지 않으면 분노하여 그 얼굴에 노기를 발끈 드러내고, 떠나게 되면 온종일 갈 수 있는 힘을 다한 뒤에 유숙하겠는가.[千里而見王 是予所欲也 不遇故去 豈予所欲哉 予不得已也 予三宿而出晝 於予心猶以爲速 王庶幾改之 王如改諸 則必反予 夫出晝而王不予追也 予然後浩然有歸志 予雖然 豈舍王哉 王由足用爲善 王如用予 則豈徒齊民安 天下之民擧安 王庶幾改之 予日望之 予豈若是小丈夫然哉 諫於其君而不受則怒 悻悻然見於其面 去則窮日之力而後宿哉]”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6 : 사고본에는 ‘悟’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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