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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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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程頤 曰 欲知中庸인대 無如權이니 須是時而爲中이라
11-6-나3(程)
程頤가 말하였다. “《中庸》을 알고자 한다면 ‘權(저울추)’만 한 것이 없으니, ‘權’은 때에 알맞게 해야 中이 된다.
注+禹也.注+顔淵.二者之間으로 取中 便不是中이니
다만 손발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일하는 것과注+‘手足胼胝’는 禹임금을 가리킨다. 신경을 쓰지 않고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 것注+‘閉戶不出’은 顔淵을 가리킨다. 두 가지의 사이에서 가운데를 취하는 것이 바로 中이 아니니,
若當手足胼胝則於此爲中이요 當閉戶不出則於此爲中이니 權之爲言 秤錘之義也 何物 爲權 義也
만약 손발에 굳은살이 박여야 마땅하다면 이때에는 中이 되고 문을 닫고 나가지 말아야 마땅하다면 이때에는 中이 된다. ‘權’이라는 말은 저울추라는 뜻이다. 어떤 것이 저울추가 되겠는가? 義이다.”
역주
역주1 11-6-나3(程) : 《二程遺書》 卷15에 보인다. 해당 인용문은 程頤가 《春秋》를 배우는 것에 대해 설명한 내용의 일부로, 《春秋》의 의리를 분변하는 기준을 익히기 위해 《中庸》을 연구해야 하며 그 핵심은 ‘權’이라고 말하였다. 일설에는 程顥의 말이라고도 한다.
역주2 : 《二程遺書》 卷15에는 없다.
역주3 : 대전본에는 ‘若’으로 되어 있다.
역주4 手足胼胝 : 《列子》 〈楊朱〉에 보인다. “禹는 사업을 이어받아 원수를 섬기면서 오직 토목공사에 힘을 기울이고 자식과 가업을 돌보지 않았고 자신의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몰골은 비쩍 마르고 손발은 굳은살이 박였다.[禹纂業事讐 惟荒土功 子産不字 過門不入 身體偏枯 手足胼胝]”라고 하였고, 《史記》 卷87 〈李斯列傳〉에는 “우임금은 龍門山을 뜷고 大夏까지 통하게 하여 九河를 소통시키고 굽이마다 아홉 제방을 쌓아 물길을 터주어 바다로 흐르게 하느라, 넓적다리에는 털이 다 닳았고 종아리에는 터럭이 없어졌고 손과 발은 굳은살이 박였고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禹鑿龍門 通大夏 疏九河 曲九防 決渟水致之海 而股無胈 脛無毛 手足胼胝 面目黎黑]”라고 하였다.
역주5 閉戶不出 : 《孟子》 〈離婁 下〉에 陋巷에 살면서도 安貧樂道한 顔子를 비유하여 “고을의 이웃 가운데 싸우는 사람이 있는데, 머리를 풀어 헤치고 관끈을 잡아 매가면서 급히 가서 구해준다면 의혹된 것이다. 비록 문을 닫고 있더라고 괜찮다.[鄕隣有鬪者 被髮纓冠而往救之 則惑也 雖閉戶可也]”라고 하였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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