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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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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5-7-나(按)
按 此 論觀人於一鄕者 當如是也 推之於國‧於天下 亦莫不然하니
15-7-나(按)
[臣按] 이는 한 고을에서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이와 같아야 함을 논한 것입니다. 이 방법을 나라에 미루어나가고, 천하에 미루어나갈 때에도 그렇지 않은 것이 없으니,
夫人之善否 不同而好惡 亦異 故善者 不善之所仇而不善者 亦善人之所弗與也
무릇 사람의 善不善이 같지 않고 好惡도 다르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이 원수로 여기는 사람이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또한 선한 사람이 허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若人無善否 翕然好之則是 雷同干譽者之所爲
만약 선한 사람인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다 그를 좋아한다면 이는 부화뇌동하여 명예를 구하는 자가 하는 짓이니 孟子가 이른바 ‘鄕原’이라는 자입니다.
若人無善否 翕然惡之 雖未見所以致之之由 然其人 亦可知矣
만약 선한 사람인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다 그를 미워한다면 비록 이렇게 된 원인은 알지 못할지라도 그 사람됨은 또한 알 수 있습니다.
故必善者 好之하며 不善者 惡之라야 是其制行之美 有以取信於君子而立心之直 又不苟同於小人이니 則其爲賢者 必矣
그러므로 반드시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미워해야 이 행실을 절제하는 아름다움이 군자에게 신뢰를 받고 뜻을 확립하는 곧음이 또 소인에게 구차하게 동화되지 않으니, 그는 틀림없이 현자인 것입니다.
原注
目之曰 鉤黨이라하고 裴度之爲人 天下 仰其勳德而八關十六子하니
陳蕃‧李膺의 무리를 천하 사람들이 그 어짊을 칭찬하였는데 中常侍는 그들을 지목하기를 “서로 결탁하여 당여가 되었다.[鉤黨]”라고 하였고, 裴度의 됨됨이를 천하 사람들이 그 功勳과 德을 흠앙했는데 八關十六子의 무리는 온갖 방법으로 헐뜯었습니다.
此所謂善者 好之而不善者 惡之也 然好者 雖多 其言 未必上徹이요 惡者 雖少 其論 常譁於人主之前이라
이것이 이른바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그 말이 반드시 임금에게까지 통하지는 않고, 미워하는 사람은 비록 적어도 그 의론이 항상 군주의 앞에서 시끄럽습니다.
所以誣善之言 易行而忠邪 每至於易位也 爲人君者 將奈何
때문에 선한 사람을 무함하는 말이 쉽게 행해지고 충성스러움과 간사함이 매양 위치가 뒤바뀌게 되니 임금이 된 자가 장차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여 使天下公論으로 皆得上聞하고 而姦邪 不得以壅蔽 則是非好惡之實 庶乎其不리이다
사방의 눈을 밝히고 사방의 귀를 통하게 하여 천하의 公論이 모두 위에까지 들릴 수 있게 하고 간사한 사람이 막고 가릴 수 없게 한다면 是非와 好惡의 실상이 거의 어긋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역주
역주1 孟子……者也 : 《說文解字》에 따르면 ‘原’은 ‘愿(삼가다)’과 같다. 본래 《논어》 〈양화〉 제13장에 “향원은 덕을 해치는 자이다.[鄕原 德之賊也]”라고 하였는데, 《맹자》 〈盡心 下〉 제37장에 이를 인용하고, 이에 대해 부연하여 ‘속마음을 감추고서 세상에 아첨하는 사람[閹然媚於世也者]’으로 “비난하려 해도 거론할 잘못이 없으며 풍자하려 해도 풍자할 잘못이 없어서 세상의 흐름에 동화하며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처신은 진실하고 신실한 것처럼 보이고, 행실은 청렴하고 결백한 것처럼 보여서 뭇사람이 모두 좋아하면 스스로도 옳다고 여기지만 堯임금과 舜임금의 도에 참예하여 들어갈 수는 없다.[非之無擧也 剌之無剌也 同乎流俗 合乎汚世 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 衆皆悅之 自以爲是 而不可與入堯舜之道]”라고 하고, 덕과 ‘비슷하면서 전혀 아닌 것[似而非]’으로 덕을 해치는 자인 이유를 설명하였다.
역주2 陳蕃……鉤黨 : 동한 말의 黨錮의 禍를 말한다. 桓帝가 즉위한 뒤 淸流와 濁流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는데, 특히 태위 陳蕃, 李膺 등은 환관의 전횡에 대해 극렬히 비판하였다. 환관 張讓의 동생 張朔과 張成이 임신부를 죽인 일로 司隷校尉 이응이 주살하자, 환관들은 장성의 제자 牢脩를 시켜서 이응이 太學의 학생들과 결탁하여 당파를 만들고 조정을 비난하며 풍속을 어지럽힌다고 탄핵하도록 하였다. 영제는 이응, 范滂, 杜密, 陳寔을 비롯하여 2백여 명을 하옥했다. 외척인 竇武와 尙書 郭諝가 관대하게 처분할 것을 주청하여 이응 등은 금고를 당한 채 낙향하였는데, 이것이 제1차 당고의 화이다. 환제가 세상을 떠나자 竇太后는 靈帝를 옹립하여 섭정하고, 오빠 두무를 대장군, 진번을 태위로 삼아 국정을 위임했다. 이때 이응과 두밀도 다시 서용되었다. 진번은 환관의 폐단을 우려하여 대장군 두무 등과 함께 환관 세력의 척결을 도모하였는데, 이 일이 사전에 누설되어 환관 王甫, 曹節, 鄭颯 등에게 당파를 결성하였다고 지목받아 축출되었다. 이때 대장군 두무는 자살하고, 진번은 살해되었고, 이응 등은 다시 금고에 처해졌다. 이듬해 환관 侯覽이 張儉 등이 당파를 만들었다고 무고하여 다시 옥사를 일으켜서 이응 등을 체포하여 처형하였다. 이후 176년 黨人의 문하생, 부자 및 형제, 5촌 내의 친척을 모두 면직시키고 금고에 처하였는데, 이것이 제2차 당고의 화이다.
역주3 中常侍 : 張儉 등이 당파를 만들었다고 무고하여 黨錮의 禍를 일으킨 중상시 侯覽을 가리킨다. 중상시는 宮廷內侍官으로 秦代에 설치되었는데 환관을 임용하였다. 西漢 때에는 列侯‧郞中 등 관원의 加官으로 이용되어 궁중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東漢 때에는 다시 환관을 專任시켰다. 秩 1천석 내지 比 2천석으로 정원이 없었다. 少府에 소속되어 황제의 좌우에서 모시면서 內宮을 출입하고 궁중의 제반업무를 보좌하며 고문과 응대에 대비하였다. 후대에는 散騎와 합병되어 散騎常侍로 일컬어지기도 했는데, 이 경우에는 士人이 임용되었다.
역주4 裴度……百端 : 裴度(765~839)는 中唐 시기의 재상으로, 자는 中立이다. 憲宗 연간에 中書 侍郞으로 淮蔡의 亂을 平定하여 晉國公에 봉해진 명신으로 관직이 司空 同平章事에 이르렀다. ‘八關十六子’는 李逢吉의 黨人을 가리킨다. 鄭注가 王受澄에게 총애를 받자, 李逢吉이 조카 李訓을 보내 정주에게 뇌물을 주고 왕수징과 결탁하여 중앙의 후원 세력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이봉길이 방자해져서 꺼리는 바가 없었다. 그의 도당에 張又新‧李續之‧張權輿‧劉栖楚‧李虞‧鄭昔範‧姜洽‧이훈 등 8명이 있었고 이들의 당여가 또 8명이 있어 모두 요직을 맡았기 때문에 팔관십육자라고 일컬어졌다. 시호는 文忠이다. 《新唐書 卷187 李逢吉列傳》
역주5 明四目 達四聰 : 《서경》 〈虞書 舜典〉에 “四岳에게 물어 사방의 문을 열어놓아서 사방의 눈을 밝히고 사방의 귀를 통하게 하였다.[詢于四岳 闢四門 明四目 達四聰]”라고 하였다.
역주6 : 대전본‧사고본에는 ‘謬’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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