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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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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敬宗, 穆宗子也.
元入朝하니 之黨 百計毁之하더라 先是 民間 謠云
23-9-가
唐 敬宗 초에注+敬宗은 穆宗의 아들이다. 裴度가 興元에서 와서 入朝하자 李逢吉의 무리가 백방으로 비방하였다. 이보다 앞서 민간에서 불리는 노래가 있었는데,
緋衣小兒坦其腹注+, .하니 天上有口被驅逐注+俗以口天爲吳字.이라하고 又長安城中 如乾象이러니
“비단옷[緋衣]을 입은 아이가 그 배[腹]가 편안하니,注+非衣는 裴자이며, 세속에서는 腹을 肚라고 생각하였다. 하늘[天] 위에 입 달린[口] 자가 내쫓김을 당하네.”注+
裴度裴度
세속에서는 口天을 吳(吳)자로 생각하였다.
라고 하였다. 또 長安城 안에 乾卦(䷀)와 같은 형상을 가진 가로로 뻗은 6개의 언덕이 있었는데,
이라 上言 度 名應하며 宅占하고 不召而來하니 其旨可見이니이다
배도의 집이 우연히 다섯 번째 언덕에 있자 諫官 張權輿가 다음과 같이 上言하였다. “배도가 이름은 圖讖에 들어맞고 집은 높은 언덕에 있습니다. 그리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도성에 왔으니 그 뜻을 알 만합니다.”
雖年少 悉察其誣謗하사 待度益厚러시니 未幾 ‧平章事하시다
경종이 비록 나이가 어렸으나 그것이 거짓 비방임을 모두 살펴 알아서 배도를 더욱 후히 대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배도를 司空‧同中書門下平章事에 임명하였다.
역주
역주1 23-9-가 : 《資治通鑑》 卷243 〈唐紀59 敬宗〉 寶曆 2년(826) 1월 조에 보인다.
역주2 唐敬宗 : 20-13-가 ‘敬宗’ 주석 참조.
역주3 裴度 : 765~839. 당나라 중기의 문학가이자 정치가이다. 자는 中立이며 河東 聞喜 사람이다. 德宗 貞元 5년(789)에 進士가 되었다. 憲宗 元和(806~820) 연간에 中書舍人, 御史中丞 등을 역임하고 同中書門下平章事에 임명되었으며 藩鎭의 세력 축소를 주장하였다. 얼마 뒤에 재상의 신분으로 吳元濟를 토벌하자 河北의 번진이 크게 두려워하여 조정에 귀순하는 자가 많았다. 晉國公에 봉해져 裴晉公으로 불렸다. 文宗을 옹립하는 데 공을 세워 관직이 中書令에 이르렀다. 시호는 文忠이다.
역주4 裴度自興元入朝 : 敬宗 寶曆 2년(826) 1월 24일 壬辰日의 일이다. ‘興元’은 府 이름으로 지금의 陝西省 漢中에 있었다. 이때 言官이 배도를 藩鎭에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자주 말하자 경종이 사신을 興元府에 보내 배도를 위로하고, 李逢吉을 꺼려 배도에게 은밀히 조정에 돌아올 날짜를 보여주자 배도가 이로 인해 入朝를 청했던 것이다. 《資治通鑑 卷243 唐紀59 敬宗 寶曆 1年 12月》
역주5 : 대전본에는 ‘開’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6 李逢吉 : 20-13-가 ‘李逢吉’ 주석 참조.
역주7 非衣裴字也 : 《廣韻》에 따르면 ‘非’의 음은 ‘緋’와 함께 모두 甫微切, 즉 ‘비’이다. ‘緋衣’는 붉은색 관복으로, 고위 관리를 의미한다.
역주8 俗以腹爲肚 : 《廣韻》에 따르면 ‘肚’의 음은 裴度의 ‘度’와 함께 모두 徒古切, 즉 ‘도’이다.
역주9 有橫……乾象 : 6개의 가로로 뻗은 언덕이 마치 《周易》 〈乾卦〉 6획의 형상(䷀)과 같았다는 말이다.
역주10 : 대전본‧사고본에는 ‘岡’으로 되어 있다. 崗은 岡의 속자이다.
역주11 度宅偶居第五崗 : 《周易》 〈乾卦 九五 爻辭〉에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라는 내용이 보인다. 程頤의 傳에 따르면 이것은 聖人이 이미 천자의 지위를 얻었으면 아래에 있는 大德의 사람을 만나보아 함께 천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이롭고, 천하 사람들은 大德의 군주를 만남이 이롭다는 말이다. 宇文愷(555~612)가 隋나라 도읍을 설계할 때 朱雀街 남북으로 여섯 개의 높은 언덕이 乾卦 6爻의 형상처럼 있자, 일부러 九二의 위치에 궁전을 지어 제왕의 거처로 삼고 九三의 위치에 百司를 세워 벼슬아치들의 수에 대응시키고 九五(帝位를 상징)의 위치에 보통 사람들이 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玄都觀과 興善寺를 세워서 그 地氣를 눌렀다고 한다. 裴度의 집은 바로 주작가에 있는 현도관과 마주보는 곳에 있었다. 《資治通鑑 卷243 唐紀59 敬宗 寶曆 2年 胡三省注》
역주12 : 대전본‧사고본에는 ‘岡’으로 되어 있다. 崗은 岡의 속자이다.
역주13 諫官……可見 : 敬宗 寶曆 2년(826) 2월의 일이다.
역주14 張權輿 : 생몰년은 자세하지 않다. 唐 穆宗 때 재상 李逢吉의 당여인 八關十六子 중 한 사람이다. 아래 ‘八關十六子’ 주석 참조.
역주15 : 사고본에는 ‘度’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16 : 대전본‧사고본에는 ‘岡’으로 되어 있다. 崗은 岡의 속자이다.
역주17 以度……章事 : 敬宗 寶曆 2년(826) 2월 9일 丁未日의 일이다. ‘平章事’는 관직명으로, 여기에서는 同中書門下平章事를 가리킨다. 당나라 초기에는 퇴직한 재상의 명호로 삼아 계속해서 재상의 일에 참여하여 들을 수 있도록 하였다. 중엽 이후에는 실제로 재상의 직임을 맡은 사람은 반드시 그 본직 외에 ‘동중서문하평장사’라는 관함을 덧붙여야 했다. 동중서문하평장사는 간략하게 ‘同平章事’라고 칭하였는데, 함께 정사를 논의한다는 뜻이다.
역주18 司空 : 관직명이다. 당나라 때 太尉‧司徒와 함께 三公으로 불렸으며 명의상 국가의 大事를 논의하는 데 참여할 수 있었으나 실제로는 加官이었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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