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가5 庾亮이 武昌에 鎭駐하여 殷浩를 불러서 記室參軍으로 삼았다. 은호는 褚裒‧杜乂와 더불어 모두 식견과 도량이 고상하고 원대하며 《老子》와 《周易》에 대한 담론을 잘하여 江東에 이름을 날렸는데, 은호가 특히 청담을 일삼는 사람들이 추숭하는 대상이 되었다.
역주
역주113-9-가5 :
《資治通鑑》 卷95 〈晉紀17 成帝 中之上〉 咸和 9년(334) 4월 조에 보인다.
역주2庾亮 :
289~340. 자는 元規이다. 東晉 潁川 鄢陵 사람이다. 누이가 明帝의 황후이다. 司馬睿(元帝)의 벽소를 받아 西曹掾이 되었다. 華軼 토벌에 참여하여 都亭侯에 봉해졌다. 元帝가 즉위한 뒤에 中書郞에 제수되고 東宮에게 侍講했다. 明帝가 즉위하자 中書監이 되었다. 王敦의 반란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나 봉호를 받지 않고 護軍將軍으로 옮겼다. 明帝 太寧 말에 王導 등과 함께 成帝를 옹립하고 中書令이 되어 정권을 장악하였다. 蘇峻과 祖約 등을 의심하였는데, 成帝 咸和 2년(327)에 소준과 조약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溫嶠 등과 함께 陶侃을 盟主로 추대하여 난을 평정했다. 함화 4년(329) 소준의 난을 자책하여 자원하여 蕪湖로 出征했다. 이어서 郭默의 반란을 토벌하였다. 함화 9년(334) 도간이 죽자 征西將軍이 되어 江州‧荊州 등 여섯 개 州의 諸軍事를 총괄하고 武昌에 진주하면서 병권을 장악했다.
역주3殷浩 :
?~356. 자는 淵源이다. 東晉 陳郡 長平 사람이다. 玄言에 뛰어나 약관 무렵부터 명성을 날려 桓溫과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庾亮이 記室參軍으로 벽소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당시 桓溫을 견제하려던 會稽王 司馬昱의 벽소에 응하여 穆帝 永和 2년(346)에 출사하여 建武將軍 揚州刺史가 되었고, 이후 환온과 대립하였다. 영화 5년(349) 石虎가 죽고 後趙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中軍將軍 揚豫徐兗靑州 諸軍事가 되어 北伐에 나섰으나 실패하여 강등되어 폐서인되었다.
역주4褚裒 :
303~349. 東晉의 대신이다. 자는 季野이다. 河南 陽翟 사람이다. 康帝의 妃인 康獻皇后의 부친이다. 어려서부터 簡貴한 풍도가 있어 杜乂와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西陽王掾으로 벽소되어 吳王 文學을 역임하였다. 蕭峻의 난이 일어나자 거기장군 郗鑑의 참군이 되어 종군하였고 난이 평정되자 都鄕亭侯에 봉해졌다. 이후 司徒從事中郞‧給事黃門侍郞‧豫章太守 등을 역임하였다. 康帝가 즉위한 뒤에 建威將軍 江州刺史에 제수되어 平州에 진주하였고, 左將軍 兗州刺史 假節로 金城에 진주하였고, 穆帝 즉위 후에는 衛將軍 徐兗州刺史 假節로 京口에 진주하였다.
역주5杜乂 :
?~?. 자는 弘理이다. 鎭南將軍 杜預의 손자이며 東晉 成帝의 妃인 成恭皇后의 부친이다. 성품이 和純하고 용모가 뛰어나 江左에 명성을 떨쳤다. 요절하여 咸康 初에 金紫光祿大夫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