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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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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9-6-나(按)
按 天子 以四海爲家하니 凡中外 孰非家事者 而大臣 天子之家老 凡中外事 亦無不當與者焉이니
19-6-나(按)
[臣按] 천자는 천하를 집안으로 삼으니 中外의 일이 무엇인들 집안일이 아니겠으며, 대신은 천자의 家老여서 中外의 일에 또한 관여해선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以此言으로 贊高宗廢王后하여 以自結於武氏 林甫 效之하여 又以此言으로 贊明皇廢子而自結於惠妃注+.하니
李勣이 집안일이라는 이 말을 가지고 王皇后를 폐위하는 것을 도와서 스스로 武氏에게 결탁한 뒤로, 李林甫가 이를 본받아서 다시 이 말을 가지고 玄宗이 세 아들을 폐위하는 것을 도와 스스로 武惠妃에게 결탁하였으니,注+현종이 세 황자를 폐립한 일이 뒤의 齊家篇에 보인다.
姦臣用心 欲逢其君之惡而杜絶諫者之言이라 故進斯語하니
姦臣의 用心이 자신의 임금의 악에 영합하여 간언하는 사람의 말을 막고 끊어버리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올렸던 것입니다.
自是 事關宮掖 人臣 有議及之者 人主 必咈然曰 此 吾家事爾 外朝臣 何與焉이리오하니
이로부터 후궁의 비빈과 관계된 일에 대해서는 신하가 이를 비판적으로 논하는 자가 있으면 임금이 반드시 발끈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이는 내 집안일일 뿐이니 조정의 신하가 어찌 관여하는가!”라고 하였습니다.
於是 官宮妾 始得以擅其斷制之權而外廷 無敢爭者 其開端 自勣與林甫始하니 蓋萬世之罪人歟인저
그리하여 환관과 宮妾이 비로소 그 결단하는 권한을 오로지할 수 있었고 조정의 신하들이 감히 간쟁하는 자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발단은 이적과 이임보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이들은 만대의 죄인일 것입니다.
역주
역주1 李勣 : 594~669. 당 고조‧태종‧고종 때의 명장이자 재상으로, 凌煙閣 24공신 중 1인이다. 원래의 姓名은 徐世勣이다. 자는 懋功이다. 曹州 離狐 사람이다. 唐 高祖 李淵에게 ‘李氏’로 賜姓되었다. 처음에는 李密의 瓦崗軍에 종군하였다. 당에 귀순하여 黎陽 總管이 되었다. 秦王 李世民을 따라 竇建德‧王世忠‧劉黑闥 등을 격파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그 후 태종이 즉위한 뒤에 幷州 都督이 되어 돌궐을 격파하고 英國公에 봉해졌다. 이후로 薛延陀, 高句麗 원정에 종군하여 공을 세웠다. 兵部尙書, 太常卿, 太子詹事, 遼東道行軍總管 등을 역임하였으며, 고종 때 尙書左僕射‧司空에 임명되었다. 總章 2년(669)에 죽었다. 太尉‧揚州大都督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貞武이다.
역주2 : 사고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3 事見後齊家篇 : 《大學衍義》 卷42 〈齊家之要4 定國本 廢奪之夫宜監〉에 보인다. 42-11-가 참조.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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