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가 《서경書經》 〈강고康誥〉에注+〈康誥〉는 周나라 武王이 康叔을 衛나라에 봉하면서 이 글을 지어 告戒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천명天命은 〈일정하지 않아서〉 두려울 만하나 성실하면 도와주려니와注+‘棐’는 ‘돕다’라는 뜻이다. ‘忱’은 ‘성실하다’라는 뜻이다.민심民心은 대략 알 수 있으나 소민小民은 보전하기가 어려우니, 가서 네 마음을 다하여서 편안히 놀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지 말아야 이에 백성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내 들으니 백성들의 원망은 큰 데 있지도 않지만 또한 작은 데 있지도 않아서, 이치를 순히 하느냐 순히 하지 않느냐, 힘쓰느냐 힘쓰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注+‘懋’는 ‘힘쓰다’라는 뜻이다.
역주
역주127-2-가 :
《書經》 〈周書 康誥〉에 보인다. 周 武王이 아우인 康叔을 衛나라에 봉하면서 경계한 글이다. 《史記》 권37 〈衛康叔世家〉에 따르면 무왕은 商나라를 멸한 뒤 상나라 유민과 그들의 도읍지였던 朝歌를 상나라 紂王의 아들인 武庚에게 주어 그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무왕의 두 아우 管叔과 蔡叔으로 하여금 무경을 감시하도록 하였는데, 무왕이 죽고 어린 成王이 즉위하여 周公이 섭정하게 되자 관숙과 채숙이 무경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이에 주공이 난을 진압하고 강숙을 이곳에 봉하여 상나라 유민들을 관리하도록 하였는데, 이 나라가 바로 衛나라이다. 주공은 성왕의 명으로 강숙을 봉하면서 〈康誥〉, 〈酒誥〉, 〈梓材〉 등 세 편의 글을 지어 정무에 힘쓸 것을 일러주었는데, 이 세 편의 글이 현행 《서경》에 모두 남아 있다. 다만 강숙을 봉한 주체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孔安國의 傳과 孔穎達의 疏에서는 주공이 성왕의 명으로 강숙을 봉하면서 지은 글로 보았으며 진덕수의 안설에서도 성왕으로 보았으나, 蔡沈과 본문 원주에서는 武王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