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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1)

역대군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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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臣班固論曰
帝卽位二十三年 宮室苑囿車騎服御 無所增益하며 有不便이면 輒弛以利民이라
嘗欲作露臺하야 召匠計之한대 直百金이라 上曰 百金 中人十家之産也 吾奉先帝宮室하야 常恐羞之하노니 何以臺爲리오하다
身衣弋綈하며 所幸愼夫人衣不曳地하고 帷幄無文繡하야 以示敦朴하야 爲天下先하다
治霸陵 皆瓦器하야 不得以金銀銅錫爲飾하고 因其山不起墳하다
南越尉佗自立爲帝어늘 召尉佗兄弟하야 以德懷之한대 佗遂稱臣이라 與匈奴結和親이러니 後而背約入盜어늘 令邊備守하고 不發兵深入하니 恐煩百姓이라
吳王詐病不朝어늘 賜以几杖하고 群臣袁盎等諫說 雖切이나 常假借納用焉하고 張武等受賂金錢覺이어늘 更加賞賜하야 以愧其心하다
專務以德化民하니 是以海內殷富하야 興於禮樂하며 斷獄數百하야 幾致刑錯하니 嗚呼仁哉인저


7-1-24 사신史臣 반고班固가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문제가 즉위하여 23년 동안 궁실宮室원유苑囿거기車騎복어服御를 늘린 것이 없고, 불편한 제도가 있으면 그때마다 완화시켜서 백성을 이롭게 하였다.
일찍이 노대露臺를 만들려고 장인匠人을 불러서 비용을 계산하게 하니 100이 소요된다고 하였다. 문제가 말하기를, ‘100금은 중인中人 10의 재산이다. 내가 선제先帝궁실宮室을 받들어 항상 수치를 끼치게 될까 두려워하였는데 어찌 노대를 만들겠는가.’ 하였다.
자신은 검은색 거친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총애하는 신부인愼夫人은 옷이 땅에 끌리지 않게 하였으며, 장막은 수놓지 않은 것을 써서 돈후하고 질박함을 보여 천하에 솔선수범을 보였다.
패릉霸陵을 다스릴 때에 모두 와기瓦器를 쓰고 , , , 으로 꾸미지 못하게 하고, 무덤을 만들 때에 있는 산을 그대로 이용하고 새로 봉분을 쌓지 못하게 하였다.
남월왕南越王 위타尉佗가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자 위타의 형제를 불러서 덕으로 회유하였는데, 위타가 마침내 칭신稱臣하였다. 흉노와 화친和親을 맺었는데 후에 흉노가 배반하여 침입하자 변경을 수비하게 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깊이 쳐들어가지 않았으니 백성을 번거롭게 하는 것을 염려해서였다.
오왕吳王이 병을 핑계 대고 입조入朝하지 않자 궤장几杖을 하사하였고, 원앙袁盎 등 신하들의 간언하는 말이 비록 심하였으나 항상 관대하게 받아들였고, 장무張武 등이 금전金錢을 뇌물로 받아 발각되자 다시 상을 더 내려서 수치를 느끼게 하였다.
전적으로 으로 백성을 교화시키니 이 때문에 온 천하가 번성하고 풍족해져서 예악禮樂에 흥기하였으며, 수백 건에 지나지 않아 거의 형벌을 사용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오호라! 어질도다.”


역주
역주1 옥사를……것이 : 顏師古의 주에 의하면 온 천하에 死罪를 판결한 것을 가리킨다고 하였다.(≪漢書≫ 권4 〈文帝紀〉)

역대군감(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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