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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3)

역대군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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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5
○上退朝御便殿하야 與儒臣論史라가 因問漢唐諸君 在位孰久오하니 對曰 漢武帝唐玄宗 皆在位久라한대
上曰 漢武好大喜功하야 海內費耗 末年 能懲前過하고 玄宗初政 有貞觀之風이나 久而恣欲하야 疏忠任邪하야 遂致禍亂하야 竄身失國하니 武帝猶爲彼善於此라하다
又曰 善心生則明하고 慾心生則闇이라 武帝以田千秋爲賢하고 玄宗以李林甫爲賢하니 此治亂所由異也라하다


35-1-5
선종이 조회를 마치고 편전便殿으로 행차하여 유신儒臣들과 함께 역사에 대해 논하다가, 인하여 묻기를, “한당漢唐의 여러 임금 가운데 재위 기간 길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 무제武帝 현종玄宗이 모두 재위 기간이 길었습니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선심善心이 생겨나면 밝아지고 욕심慾心이 생겨나면 어두워지는 것이다. 무제는 를 어질다 여겼고 현종은 를 어질다 여겼으니, 이것이 치세治世난세亂世로 달라진 이유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武帝는……뉘우쳤고 : 무제는 前漢의 제7대 황제인 劉徹로, 유학을 바탕으로 국가를 다스렸으며 해외 원정을 펼쳐 흉노, 위만조선 등을 멸망시켜 당시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함으로써 전한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러나 일생 동안 서역을 개척하느라 국력을 크게 손상한 것을 만년에 이르러 깊이 후회하여 서역에서 탈취한 輪臺의 땅을 포기하였고 아울러 자신을 나무라는 조서를 내렸다고 한다.
역주2 貞觀 : 唐나라 太宗의 연호로, 627년부터 649년까지의 재임 기간에 사용되었다. 태종은 房玄齡, 杜如晦, 魏徵과 같은 명신들의 보필을 받아,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각종 律令을 정비하였으며, 突厥과 吐蕃까지도 아우르는 성대를 이루었는데, 이때의 훌륭한 치적을 가리켜 ‘貞觀之治’라고 한다.
역주3 玄宗은……잃었으니 : 현종은 唐나라 제6대 황제인 李隆基이다. 큰아버지인 중종이 시해당하자 군대를 끌고 궁으로 들어가 황후 韋氏와 安樂公主를 죽이고 위씨와 武氏 집안을 몰살하였으며, 睿宗을 이어 즉위시킨 뒤에는 ‘開元之治’라는 태평성세를 열었다. 그러나 이후로 며느리 楊玉環을 가로채어 貴妃로 삼고 환관 高力士와 간신 李林甫 등을 중용하여 결국 安史의 亂을 초래하였고, 안사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楊貴妃를 죽이고 자신도 제위에서 물러났다.
역주4 田千秋 : ?〜77. 전국시대 齊나라의 후예로 대대로 長陵에 살았다. 巫蠱의 옥사에 대해 漢 武帝에게 충직한 간언을 하여 그 공으로 무제의 신임을 받아 뒤에 승상에 오르고 富民侯에 봉해졌다. 늙어서 수레를 타고 궁궐을 출입할 수 있는 특혜를 누려 사람들이 이 때문에 車千秋라고 불렀으며, 자손들이 이로 인해 車氏가 되었다.(≪漢書≫ 권66 〈田千秋傳〉)
역주5 李林甫 : 唐 玄宗 때의 權姦으로, 환관 및 妃嬪과 결탁하여 황제의 동정을 살피면서 아첨하여 총애를 얻은 뒤 19년 동안 제멋대로 권세를 휘두름으로써 安祿山의 난이 일어나게 하는 빌미를 만들었다.(≪新唐書≫ 권223 上 〈姦臣列傳 上 李林甫〉)

역대군감(3)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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