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宗享國久長與仁宗同이나 惟其用相賢否라 故致治有異耳라 蔡州之役에 幸依元兵하야 以雪先世之恥나 顧乃貪地棄盟하야 事釁隨起하고 兵連禍結하야 境土日蹙하니 由其中年에 嗜慾旣多하야 怠於政事하고 權移姦臣하야 以致於此라
然嘉定以來로 正邪貿亂하고 國是靡定이어늘 帝自卽位로 黜王安石而尊濂洛하야 表章朱呂하고 丕變士習하야 使後世知理學足以復古帝王之治하니 帝之功不爲少焉이라 廟號曰理宜哉인져
“이종理宗이 나라를 향유한 햇수는 인종仁宗과 같았지만, 오직 재상을 등용하는 일에 현명했기 때문에 그 치적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채주蔡州의 전투에서 다행히도 원병元兵의 지원을 받아 선세先世의 치욕을 갚을 수 있었지만, 돌아보건대 땅을 탐하여 맹약을 저버려서 분쟁의 실마리가 잇달아 일어나고 병화兵禍가 끊임없이 이어져 강역疆域이 날로 줄어들었으니, 이는 중년中年에 기욕嗜慾이 많아져서 정사를 게을리하고 그 결과 권력이 간신들에게 옮겨갔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래로
정正과
사邪가 문란해지고
국시國是가 안정되지 못했는데, 이종이 즉위한 뒤로
왕안석王安石을 축출하고
을 존중하여
주희朱熹와
여조겸呂祖謙을 표창하여 드러내고
사습士習을 크게 변하게 해서 후세로 하여금
이학理學이 옛 제왕의
치화治化를 회복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하였으니, 이종의 공적은 적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묘호廟號를 ‘
이理’라고 한 것이 마땅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