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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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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44
史臣論曰
理宗享國久長與仁宗同이나 惟其用相賢否 故致治有異耳 蔡州之役 幸依元兵하야 以雪先世之恥 顧乃貪地棄盟하야 事釁隨起하고 兵連禍結하야 境土日蹙하니 由其中年 嗜慾旣多하야 怠於政事하고 權移姦臣하야 以致於此
然嘉定以來 正邪貿亂하고 國是靡定이어늘 帝自卽位 黜王安石而尊濂洛하야 表章朱呂하고 丕變士習하야 使後世知理學足以復古帝王之治하니 帝之功不爲少焉이라 廟號曰理宜哉인져


26-1-44
사신史臣이 다음과 같이 하였다.
이종理宗이 나라를 향유한 햇수는 인종仁宗과 같았지만, 오직 재상을 등용하는 일에 현명했기 때문에 그 치적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채주蔡州의 전투에서 다행히도 원병元兵의 지원을 받아 선세先世의 치욕을 갚을 수 있었지만, 돌아보건대 땅을 탐하여 맹약을 저버려서 분쟁의 실마리가 잇달아 일어나고 병화兵禍가 끊임없이 이어져 강역疆域이 날로 줄어들었으니, 이는 중년中年기욕嗜慾이 많아져서 정사를 게을리하고 그 결과 권력이 간신들에게 옮겨갔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래로 가 문란해지고 국시國是가 안정되지 못했는데, 이종이 즉위한 뒤로 왕안석王安石을 축출하고 을 존중하여 주희朱熹여조겸呂祖謙을 표창하여 드러내고 사습士習을 크게 변하게 해서 후세로 하여금 이학理學이 옛 제왕의 치화治化를 회복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하였으니, 이종의 공적은 적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묘호廟號를 ‘’라고 한 것이 마땅하다고 하겠다.”


역주
역주1 嘉定年間 : 宋 寧宗의 연호로 1208년에서 1224년까지이다.
역주2 濂洛 : 宋나라 때 道學이 일어났던 濂溪와 洛陽의 합칭으로, 흔히 성리학 혹은 儒學을 의미한다. 濂溪에서는 周敦頤(1017~1073)가, 洛陽에서는 程顥(1032~1085)와 程頤(1033~1107)가 講學하였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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