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唐以來로 禮文多缺하니 崇義善禮學이라 朝廷凡有大事에 多從其議라 周世宗嘗命參定郊廟祭玉하니 崇義因取隋開皇中禮官所撰三禮圖하야 重加考正하야 至是上之라
帝詔太子詹事尹拙하야 集儒學之士參議하니 於是翰林學士竇儀詳閱定爲十五卷以聞한대 詔頒行焉하고 且圖于國子監講堂之壁하다
건륭建隆 3년(962) 여름 4월에
태상박사太常博士 가 ≪
삼례도三禮圖≫를 올렸다.
당唐나라 이래로 예문禮文에 빠진 것이 많았는데 섭숭의가 예학에 능하였기 때문에 조정에 큰일이 있으면 대부분 그의 의견을 따랐다. 후주後周의 세종世宗이 일찍이 교궁郊宮과 종묘宗廟의 제사에 쓰는 옥玉을 참작해서 정하라고 하니, 섭숭의가 수隋나라 개황연간開皇年間에 예관禮官이 지은 ≪삼례도≫를 가지고 거듭 바로잡아 이때에 이르러 올렸다.
태조가
태자첨사太子詹事 에게 명하여
유학자儒學者들을 모아 함께 의논하게 하니, 이에
한림학사翰林學士 두의竇儀가 상세히 살펴 15권으로 정하여 보고하자 태조가 공포하여 시행하라고 명하고, 또 국자감 강당의 벽에 그리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