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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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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6
○初 國子祭酒孔戣爲華州刺史하니 明州歲貢蚶蛤淡菜 水陸遞夫勞費 戣奏疏罷之러니
至是 嶺南節度使崔詠薨하니 宰相奏擬代詠者數人이로되 上皆不用曰 頃有諫進蚶蛤淡菜者하니 爲誰 可求其人與之하라 遂以戣爲嶺南節度使하다


17-1-16
처음에 국자좨주國子祭酒 화주자사華州刺史가 되었을 때 명주明州에서 해마다 감합蚶蛤담채淡菜를 공물로 바치는데 수로와 육로로 운반하는 수고와 비용이 많이 들었다. 공규가 상소를 올려 혁파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영남절도사嶺南節度使 최영崔詠이 죽으니 헌종이 모두 기용하지 않고 이르기를, “전에 감합과 담채를 진상하는 일을 간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인가? 그 사람을 찾아서 임명해야겠다.” 하고서, 마침내 공규를 영남절도사로 삼았다.


역주
역주1 孔戣 : 753~825. 자는 君嚴이다. 孔子의 38세손이다. 공규가 尙書左丞으로 있다가 73세가 되자 사직을 청하였다. 吏部侍郞 韓愈가 까닭을 물었는데, 공규가 답하기를 “나는 나이가 지극히 많으니 이것이 떠나야 할 첫 번째 이유이고, 나는 좌승으로 있으면서 郎官을 진퇴시키지 못하고 오직 재상이 하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였으니 이것이 떠나야 할 두 번째 이유이다.”라고 하였다. 한유가 감탄하고 공규의 청을 들어주지 말라고 청하였는데, 목종이 공규의 사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규가 끝내 면직되지 않았다가 예부상서로 치사하였는데, 목종이 해마다 양고기와 술을 보내서 예우하였다.(≪新唐書≫ 권163 〈孔戣列傳〉)
역주2 재상이……아뢰었는데 : 唐나라 후기에는 6품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吏部와 兵部의 銓選과 달리 5품 이상에 대해 재상들이 進擬하여 선발하였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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