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嘗論聖人眞假之意에 導等不能屈하고 又習武藝하고 善撫將士하니 于時에 東朝濟濟하고 遠近屬心焉이러라
王敦作亂에 素以帝神武明略이 朝野之所欽信이라 欲誣以不孝而廢焉하야 大會百官而問溫嶠호되 皇太子以何德稱고하야 聲色俱厲하야 必欲使有言이어늘
嶠對曰 鉤深致遠은 蓋非淺局所量이어니와 以禮觀之하면 可稱爲孝矣라하니 衆皆以爲信然이라 敦謀遂止하다
元帝崩에 帝卽位하고 葬元帝于建平陵할새 帝徒跣至於陵所하니라
13-3-2 일찍이 성인聖人이 진가眞假를 구분한 뜻에 대해 논할 적에 왕도王導 등이 명제의 뜻을 굽히게 할 수 없었고 또 무예武藝를 익히고 장사將士를 잘 어루만졌으니, 당시 동궁東宮에 선비들이 많이 모이고 원근의 사람들이 마음으로 의탁하였다.
왕돈王敦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평소 명제의 뛰어난
무용武勇과 밝은
지략智略이
조야朝野에서 공경과 믿음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왕돈은 명제가 효성스럽지 못하다고
무함誣陷한 다음 폐위시키고자 하여 크게
백관百官을 모아놓고
에게 묻기를, “
황태자皇太子는 어떤
덕德으로 칭송되는가?” 하면서 말과 안색을 매우 엄하게 하여 백관들에게 태자가 불효하다고 말하게 하고자 하였는데,
온교가 대답하기를, “깊은 마음과 원대한 의리를 헤아리는 것은 미천한 국량으로 헤아릴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예禮로써 본다면 효자라고 칭송할 만합니다.” 하니 백관들이 모두 그렇다고 하였다. 이에 왕돈의 계획이 마침내 중지되었다.
원제元帝가 붕어崩御하자 명제가 즉위하고, 건평릉建平陵에 원제를 장사 지낼 때 명제는 맨발로 능소陵所에 이르러 슬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