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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1)

역대군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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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嘗論聖人眞假之意 導等不能屈하고 又習武藝하고 善撫將士하니 于時 東朝濟濟하고 遠近屬心焉이러라
王敦作亂 素以帝神武明略 朝野之所欽信이라 欲誣以不孝而廢焉하야 大會百官而問溫嶠호되 皇太子以何德稱고하야 聲色俱厲하야 必欲使有言이어늘
嶠對曰 鉤深致遠 蓋非淺局所量이어니와 以禮觀之하면 可稱爲孝矣라하니 衆皆以爲信然이라 敦謀遂止하다
元帝崩 帝卽位하고 葬元帝于建平陵할새 帝徒跣至於陵所하니라


13-3-2 일찍이 성인聖人진가眞假를 구분한 뜻에 대해 논할 적에 왕도王導 등이 명제의 뜻을 굽히게 할 수 없었고 또 무예武藝를 익히고 장사將士를 잘 어루만졌으니, 당시 동궁東宮에 선비들이 많이 모이고 원근의 사람들이 마음으로 의탁하였다.
왕돈王敦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평소 명제의 뛰어난 무용武勇과 밝은 지략智略조야朝野에서 공경과 믿음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왕돈은 명제가 효성스럽지 못하다고 무함誣陷한 다음 폐위시키고자 하여 크게 백관百官을 모아놓고 에게 묻기를, “황태자皇太子는 어떤 으로 칭송되는가?” 하면서 말과 안색을 매우 엄하게 하여 백관들에게 태자가 불효하다고 말하게 하고자 하였는데,
온교가 대답하기를, “깊은 마음과 원대한 의리를 헤아리는 것은 미천한 국량으로 헤아릴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로써 본다면 효자라고 칭송할 만합니다.” 하니 백관들이 모두 그렇다고 하였다. 이에 왕돈의 계획이 마침내 중지되었다.
원제元帝붕어崩御하자 명제가 즉위하고, 건평릉建平陵에 원제를 장사 지낼 때 명제는 맨발로 능소陵所에 이르러 슬퍼하였다.


역주
역주1 溫嶠 : 東晉의 名臣으로, 지혜와 학식을 겸비하였으며 자는 太眞이다. 成帝 때 蘇峻이 반란을 일으키자 陶侃을 盟主로 추대하여 사방에 檄文을 전하고 마침내 난리를 평정하였으며, 明帝 때 王敦이 武昌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군대를 이끌고 가서 끝내 토벌하였다. 시호는 忠武이다.(≪晉書≫ 권67 〈溫嶠傳〉)

역대군감(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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