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年正月
에 車駕詣郊壇
이라 自祖宗以來
로 皆朝百官後乃行
이어늘 至是
하야 上先日諭禮官明
早行
이라하고 不視朝
라
旣至南郊에 躬詣神廚하야 凡諸祭物을 一一閱視하고 召太常寺官諭之曰 祭物은 固應精潔이요 典祭之官은 皆以虔誠爲本이니 宜秉寅淸以率百執事하야 分毫無慢이라야 庶幾神明有歆享之道라하다
晩御齋宮에 旗手衛奏請暮夜如故事放烟火라한대 不從하고 顧謂侍臣曰 朕早來不視朝之故는 蓋一心對越하야 無暇他及이어늘 今又暇觀烟火乎아하다
是晩에 陰雲四合하야 至夕雨雪이라가 行禮之際에 雲斂風靜하야 星月朗霽하고 天氣融和하며 助祭執事咸中禮度하니 上大悅이라
선덕宣德 8년(1433) 정월正月에 거가車駕가 남교南郊의 제단祭壇에 이르렀다. 조종祖宗으로부터 이후로 모두 백관百官을 조회한 뒤에 남교로 갔는데, 이때에는 선종이 하루 전에 예관禮官에게 유시諭示하기를, “내일 아침에 남교로 가겠다.” 하고, 조회를 보지 않았다.
남교에 이른 뒤에는 직접
신주神廚에 이르러 여러 가지
제물祭物을 일일이 점검하고
태상시太常寺의 관원을 불러 유시하기를, “제물은 진실로
정결精潔하게 해야 하고
제사祭祀를 주관하는 관원은 모두 정성을 기본으로 진행해야 하니, 마땅히
의 정성을 가지고 모든
집사執事를 거느려서 조금도 게을리하는 점이 없어야 거의
신명神明이
흠향歆享하는 도리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
저물녘에
재궁齋宮에 행차하였을 때
기수위旗手衛에서
주청奏請하기를, “밤에
고사故事에 따라
연화烟火를 발사하겠습니다.” 하였는데, 따르지 않고 돌아보며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짐이 아침에 조회를 보지 않은 까닭은 대개 정성을 다해
하느라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연화烟火를 볼 겨를이 있겠는가?” 하였다.
이날 늦게 먹구름이 사방에서 모여 저녁이 되자 눈이 내리다가 제례祭禮를 행할 때 눈이 그치고 바람이 고요하여 달과 별이 밝게 빛나고 천기天氣가 온화하였으며, 제례를 돕는 집사執事들이 모두 예도禮度에 맞게 일을 진행하니, 선종이 크게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