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主文帝는 諱義隆이니 武帝第三子也라 永初元年에 封爲宜都郡王하니 時年十四라
是歲來朝한대 會武帝當聽訟이라가 遣訊建康獄囚하니 辯斷稱旨하야 武帝甚悅이라
及少帝義符廢에 百官議所立할새 以宜都王素有令望이라하야 奉迎하야 入繼大統하고 改元元嘉하다
初에 司徒徐羨之尙書令傅亮執政이러니 至二年에 上表歸政하니 始親覽萬幾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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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宋主 문제文帝는 이름이
의륭義隆이니,
무제武帝(
유유劉裕)의 셋째 아들이다.
에
의도군왕宜都郡王에 봉해졌으니 당시 나이 14세였다.
宋文帝
신장身長이 7척尺 5촌寸이고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예서隷書를 잘 썼다.
이해에 들어와 조회하였는데, 마침 무제가 송사訟事를 처리하다가 문제를 파견하여 건강建康의 옥獄에 죄수들을 신문訊問하게 하니, 변석辨析하고 판단判斷하는 것이 뜻에 맞아서 무제가 매우 기뻐하였다.
가
폐위廢位되었을 때
백관百官들이 황제로 세울 사람을 의논하다가
의도왕宜都王이 평소 아름다운 명망이 있다고 하여 맞이하여서 들어와
대통大統을 계승하게 하였고, 연호를 고쳐
원가元嘉라 하였다.
처음에 사도司徒 서선지徐羨之와 상서령尙書令 부량傅亮이 집정執政하였는데, 원가元嘉 2년(425)에 〈서선지 등이〉 표문表文을 올려 문제에게 정사를 돌려주니, 비로소 직접 만기萬機를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