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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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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5
○五月 張方平遷禮部尙書知陳州하야 過都할새 留判尙書省이라
請鄆州하야 陛辭 論天下事하니 帝嘉嘆曰 學士其可以去朝廷哉 方平力請行한대 加侍讀學士하야 徙定州하니 乞歸養한대 改徐州하고 帝累欲召還而左右無助之者
一日謂執政曰 吾在藩邸時 見其芻蕘論及所對策호라 近者代言之臣 未嘗副吾意 若使居典誥之任이면 亦國華也 執政乃奉詔하야 拜翰林學士承旨하다
問治道體要하니 方平以簡易誠明爲對하야 言近而旨遠하니 帝不覺前席하고 曰 吾昔奉朝請 望侍從大臣하고 以謂皆天下選人이라 今乃不然이러니 聞學士言하니 始知有人矣로다


24-1-5
5월에 예부상서禮部尙書 지진주知陳州로 승진하여 도성을 지날 때에 영종이 그를 판상서성判尙書省에 임명하였다.
지운주知鄆州를 요청하여 하직인사를 할 때에 천하의 일을 논하니, 영종이 감탄하며 이르기를, “학사學士가 조정을 떠나게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장방평이 떠나게 해달라고 극력 청하니 시독학사侍讀學士를 더하고 정주定州로 옮겨주었고, 고향에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겠다고 청하니 서주徐州로 옮겨주었으며, 영종이 누차 소환하고 싶었으나 좌우에 도와주는 자가 없었다.
어느 날 집정執政에게 이르기를, “내가 번저藩邸에 있을 때에 그의 〈추요론芻蕘論〉 및 대책對策을 보았다. 근자에 대언代言의 직책에 있는 신하가 일찍이 나의 뜻에 부합한 적이 없었으니, 만약 그로 하여금 전고典誥의 직임에 있게 한다면 또한 나라를 빛낼 것이다.” 하니, 집정이 조령을 받들어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로 임명하였다.
영종이 그에게 치도治道의 요체를 물으니 장방평이 간이簡易성명誠明이라고 대답하였다. 말은 이해하기 쉽지만 뜻이 원대하므로 영종이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다가가 이르기를, “내가 옛날 때에 시종侍從하는 대신大臣을 바라보고 모두 천하에서 뽑은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렇지 않다. 학사의 말을 듣고서 비로소 이런 인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였다.


역주
역주1 張方平 : 1007~1091. 宋나라 睢陽 사람으로, 자는 安道이고, 호는 樂全居士이다. 慶曆 5년(1045)에 ≪新唐書≫ 편수에 참여하라는 명을 받았으며, 神宗 때에는 參知政事가 되었다. 王安石이 정권을 잡았을 때 조금도 굽히지 않은 것으로 명망이 높았다. 일찍이 蘇軾을 諫官으로 천거하였으며, 소식이 어사에게 탄핵받았을 때 그를 위해 奏章을 올려 힘을 써주었다. 이 때문에 소식은 종신토록 장방평을 공경하며 섬겼다.(≪宋史≫ 권318 〈張方平列傳〉)
역주2 奉朝請 : 고대에 제후가 봄에 천자에게 조회 오는 것을 朝라고 하고, 가을에 천자에게 조회 오는 것을 請이라고 한다. 이로 인하여 정기적으로 조회에 참석하는 것을 봉조청이라고 한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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