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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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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24
○淳祐元年이라 追封周敦頤汝南伯張載郿伯程顥河南伯程頤伊陽伯朱熹徽國公竝從祀孔子廟廷하고
詔曰 朕惟孔子之道 自孟軻後 不得其傳이라가 至我朝하야 周敦頤張載程顥程頤 眞見實踐하고 深探聖域하니 千載絶學 始有指歸
中興以來 又得朱熹하야 精思明辨하야 表裏混融하야 使大學論孟中庸之書 本末洞徹하니 孔子之道 益以大明于世 朕每觀五臣論著 啓沃良多
今視學有日하니 其令學官으로 列諸從祀하야 以示崇奬之意하라
又以王安石謂天命不足畏 祖宗不足法이요 人言不足恤 爲萬世罪人하니 豈宜從祀孔子리오 其黜之하라하다
帝謁孔子하고 遂御崇化堂하야 命祭酒曹觱하야 講禮記大學篇하고 監學官 各進一秩하고 諸生 推恩賜帛有差하고
以紹定三年所製伏羲堯舜禹湯文武周孔顔曾子思孟子道統十三贊으로 就賜國子監하야 宣示諸生하고 復親書朱熹白鹿洞學規賜焉하다


26-1-24
순우淳祐 원년(1241)에 주돈이周敦頤여남백汝南伯에, 장재張載미백郿伯에, 정호程顥하남백河南伯에, 정이程頤이양백伊陽伯, 주희朱熹휘국공徽國公추봉追封한 다음 모두 공자孔子묘정廟廷종사從祀하고,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이 생각건대, 공자의 맹자孟子 이후로 전해지지 않다가 우리 나라에 이르러 주돈이ㆍ장재ㆍ정호ㆍ정이가 〈그 도를〉 참으로 보고 실천하여 성현聖賢의 경지를 깊이 탐색하였으니, 천년 동안 단절되었던 학문이 비로소 주지主旨가 서게 되었다.
중흥한 이래 다시 주희를 얻어 정밀하게 사려思慮하고 명확하게 분변하여 표리表裏가 융화되게 해서 ≪대학大學≫ㆍ≪논어論語≫ㆍ≪맹자孟子≫ㆍ≪중용中庸≫의 글로 하여금 본말本末이 환히 통하게 하였으니, 공자의 도가 세상에 더욱 크게 밝혀졌다. 따라서 짐은 매번 이 다섯 사람의 논저論著를 볼 때마다 의 도움이 실로 많았다.
지금은 하기까지 날이 있으니, 학관學官으로 하여금 다섯 사람을 종사從祀하는 반열에 포함시켜서 숭상하고 권장하는 뜻을 보이도록 하라.” 하였다.
만세萬世죄인罪人이 되었으니, 어찌 공자의 묘정廟廷종사從祀할 수 있겠는가. 그의 위패를 축출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종이 공자의 사당을 알현하고 마침내 숭화당崇化堂에 거둥하여 좨주祭酒 조필曹觱에게 명하여 ≪예기禮記≫ 〈대학大學을 강론하게 한 다음 감학관監學官은 각각 한 등급씩 승진시키고 제생諸生은전恩典을 베풀어 차등 있게 비단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소정紹定 3년(1230)에 제술製述복희伏羲제요帝堯제순帝舜우왕禹王탕왕湯王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공자孔子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도통道統에 관한 13국자감國子監에 하사하여 제생諸生에게 널리 보이고, 다시 주희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친히 써서 하사하였다.


역주
역주1 啓沃 : 신하가 자기의 식견으로 임금을 잘 啓導한다는 의미로, 殷 高宗이 그 재상 傅說에게 “그대의 마음을 열어 나의 마음을 적시라.[啓乃心 沃朕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書經≫ 〈商書 說命 上〉)
역주2 視學 : 천자가 친히 國學에 가거나 혹은 담당관을 파견하여 學徒들에게 시험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禮記≫ 〈學記〉에 “여름에 禘祭를 지내기 전에는 학교를 시찰하러 가지 않는다.” 하였는데, 이에 대한 孔穎達의 疏에 “視學은 학자들에게 경전의 공부를 고시하는 것이다. 혹은 군주가 친히 가기도 하고, 혹은 담당관을 보내기도 하는데, 이는 천자의 大禮가 아니다.” 하였다.
역주3 王安石은……하여 : 北宋 神宗年間에 왕안석이 新法에 의한 정치개혁을 도모하면서 “천변은 두려워할 것이 없고 조종의 법도 본받을 것이 없으며 사람들의 말은 신경 쓸 것이 없다.[天變不足畏 祖宗不足法 人言不足恤]”라고 했던 사실을 가리킨다.(≪宋史≫ 권327 〈王安石列傳〉)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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