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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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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38
○六年秋 蘇轍對策하야 語近切直하니 諫官司馬光 考其策하야 入第三等이라 翰林學士范鎭難之하야 欲降其等하니 蔡襄曰 吾三司使이니 司會之言 吾媿之而不敢怨호라
惟胡宿以爲策 不對所問하고 引唐穆宗하야 以況盛世하니 非所宜言이라 力請黜之하니 光言是於三人中 獨有愛君憂國之心하니 不可不收
執政亦以爲當黜이라하니 帝不許曰 求直言而以直棄之 天下其謂我何리오 乃收入第四等하다


23-1-38
가우嘉祐 6년(1061) 가을에 대책문對策文을 제출하였는데, 그 말이 간절하고 솔직한 데 가까우니 간관諫官 이 그 책문策文을 뽑아서 제3등에 넣었다. 한림학사翰林學士 이 이의를 제기하여 그 등급을 낮추려고 하니 채양蔡襄이 말하기를, “우리는 이니 의 말을 내가 부끄럽게 여기지만 감히 원망하지는 않는다.” 하였다.
오직 만은 말하기를, “책문策文이 질문한 것에 대답하지 않고 목종穆宗을 인용하여 성세盛世에 견주었으니 해야 할 말이 아니다.” 하고 그 답안을 내치기를 강력하게 청하니, 사마광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세 사람 중에 홀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이 있으니 거두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하였다.
집정執政 또한 내쳐야 한다고 하니 인종이 허락하지 않으면서 이르기를, “직언直言을 구하고서 직언했다는 이유로 버린다면 천하 사람들이 나를 두고 뭐라고 하겠는가.” 하고 마침내 거두어 제4등에 넣었다.


역주
역주1 蘇轍 : 1039~1112. 北宋 시대의 문인으로, 자는 子由이고, 호는 欒城이다. 아버지 蘇洵, 형 蘇軾과 함께 삼부자가 唐宋八大家에 꼽힌다. 형 소식과 함께 進士에 급제하여 관리가 되었지만, 新法派와 뜻을 달리하여 관직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벼슬은 門下侍郞을 지냈다. 저서에 ≪春秋集解≫ㆍ≪老子解≫ㆍ≪詩傳≫이 있고, 문집으로 ≪欒城集≫이 있다.
역주2 司馬光 : 1019~1086. 자는 君實이고, 호는 迂叟이며, 시호는 文正이다. 山西省 夏縣 涑水鄕에서 태어났으므로 흔히 涑水先生이라고 불렸다. 또한 太師․溫國公에 추증되었기 때문에 司馬溫公이라고도 한다. 전국시대부터 秦 二世까지의 역사를 엮어 ≪通志≫ 8권을 편찬했는데, 英宗의 명령으로 이를 속찬하고, 神宗이 ≪資治通鑑≫이라 명명하였다. 그 외에 ≪涑水紀聞≫, ≪司馬文正公集≫ 등의 저술이 있다.
역주3 范鎭 : 1008~1089. 宋나라 仁宗, 哲宗 때의 名臣이다. 成都 華陽 사람으로, 자는 景仁이고, 시호는 忠文이다. 인종 寶元 원년(1038) 進士에 급제하였다. 인종 嘉祐 2년(1057)에 知諫院으로 있으면서, 후사가 없는 인종에게 면전에서 建儲를 청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이후 상소를 19번 올리고 100여 일을 待命하는 동안 머리털과 수염이 모두 하얗게 되었다고 한다. 언관에서 물러난 뒤에도 매년 건저를 진언하였다. 神宗이 즉위한 뒤 한림학사가 되었으나 王安石의 新法을 극력 반대하다가 致仕하였다.(≪宋史≫ 권337 〈范鎭列傳〉)
역주4 三司使 : 唐나라 때 설치되어 宋나라까지 있었던 관직 명칭으로, 戶部使, 度支使, 鹽鐵使가 있다. 최고의 財政長官으로 국가 錢穀의 出納을 관장한다. 지위는 執政官 다음이다.
역주5 司會 : 周官의 이름으로, 천하의 財用에 대한 會計를 주관하였다.(≪周禮≫ 〈天官 司會〉)
역주6 胡宿 : 995~1067. 宋나라 晉陵 사람으로 자는 武平이고, 시호는 文恭이다. 湖州太守가 되어 石塘을 쌓아 水患을 방지함으로써 백성들이 그 제방을 胡公塘이라 불렀다. 뒤에 太子少師가 되었다.(≪宋史≫ 권318 〈胡宿列傳〉)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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