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顧謂侍臣曰 此言有理라 國家重農이면 則百姓得盡力하야 天下富庶라
古之重農은 莫如周니 后稷은 以敎民稼穡開國하고 公劉는 克篤前烈하고 文王時엔 耕者九一하고 武王은 重民食하고 周公은 述豳風하야 以戒成王하야 備言農事하니 當時에 民用阜成하야 治協泰和라
周以下는 莫如西漢하니 高帝는 困賈人하야 以抑其末하고 文帝는 二十餘年을 勤勤以勸農免租詔有司하고 武帝는 雖以土木兵戈勞民이나 至其末年하야 亦知勸農作하야 以休息民이러니
至於元成之間하야 朝政固有乖闕이나 而百姓安業自若하야 天下富庶가 幾二百年하니
成周享國이 過於夏商하고 王莽簒漢에 終以民心不忘而復之하니 養民之功大矣라 朕於斯事에 蓋寢食未嘗忘也라하다
백성 가운데 “조정朝政에서는 마땅히 중농重農을 가장 급선무로 삼아야 합니다.”라고 건언建言하는 자가 있었다.
선종이
시신侍臣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이 말이 일리가 있다.
국가國家에서 농업을 중시하면
백성百姓이 힘을 다하여 천하가
해질 것이다.
옛날 농업을 중시한 시기로는
주周나라만 한 때가 없었으니,
당시에는 백성들이
정치가
천심天心에 부합하여 태평시대를 이루었다.
주周나라 이후로는
서한西漢 시기만 한 때가 없었으니,
고제高帝는
고인賈人에게 곤액을 당하여 상업을 억제하였고,
무제武帝는 비록 토목공사와 전쟁으로 백성을 수고롭게 하였지만 말년에 이르러서는 또한 농업을 권장하여 백성들이 편안히 생활하게 할 줄 알았다.
그러다가
와
연간에 이르러
조정朝政이 실로 분열되었지만 백성은 생업을 편안히 여기며 태연자약하여 천하가
부서富庶를 누린 기간이 거의 200년에 이르렀다.
가
국운國運을 누린 기간은
보다 길었고, 또
이
한漢나라를 찬탈하였지만
백성을 기르는
공덕功德은 중대한 일이다. 그러므로 짐은 이 일을 잘 때나 먹을 때나 잊은 적이 없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