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歷代君鑑(2)

역대군감(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역대군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善可爲法
英宗
24-1-1
英宗皇帝諱 濮安懿王允讓第十三子 母曰仙遊縣君任氏 四歲 仁宗養於內러니 寶元初 豫王生하니 乃歸濮邸 帝天性篤孝하고 好讀書하야 不爲燕嬉褻慢하고 服御儉素如儒者
每以朝服見敎授 曰 師也 敢弗爲禮아하더라 時吳王宮敎吳充 進宗室六箴하니 仁宗付宗正한대 帝書之屛風以自戒하니라
景祐三年 賜名宗實하고 嘉祐中 宰相韓琦請建儲한대 仁宗曰 宗子已有賢知可付者하니 卿等其勿憂하라
時帝方服濮王喪이라 辭奏四上 乃聽終喪이라
七年八月 立爲皇子하고 改今名하니 帝聞詔하고 稱疾益堅辭러니 八年仁宗崩하니 帝嗣皇帝位하다


본받을 만한 선정善政
송나라
영종
24-1-1
영종황제의 휘는 이니, 복안의왕濮安懿王 조윤양趙允讓의 열셋 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선유현군仙遊縣君 임씨任氏이다. 4세에 인종仁宗이 대내에서 길렀는데 보원寶元 초에 예왕豫王이 태어나자 복안의왕의 사저私邸로 돌아갔다. 영종은 천성이 매우 효성스럽고 독서를 좋아하여 연회를 열어 즐기거나 경박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사용하는 물건은 검소하여 유자儒者와 같았다.
매일 조복朝服 차림으로 교수敎授를 보고서 이르기를, “스승인데 감히 예를 갖추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때 오왕吳王궁교宮敎 이 〈종실륙잠宗室六箴〉을 올리니 인종이 종정宗正에게 내렸었는데, 영종이 병풍에 써서 스스로 경계하였다.
송영종宋英宗송영종宋英宗
경우景祐 3년(1036)에 종실宗實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가우연간嘉祐年間에 재상 한기韓琦건저建儲를 세우기를 청하자 인종이 이르기를, “종자宗子 중이 이미 어질고 지혜로워 맡길 만한 사람이 있으니 경들은 근심하지 말라.” 하였다.
이때 영종이 복왕濮王의 상중에 있었으므로 황태자皇太子를 사양하는 주문奏文을 네 번이나 아뢰고서야 비로소 삼년상을 끝까지 마치는 것을 허락받았다.
가우 7년(1062) 8월에 황자皇子로 세우고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改名하였다. 영종이 조서를 듣고 병을 핑계 대고 더욱 굳게 거절하였는데, 가우 8년(1063)에 인종이 붕어하자 영종이 황제위를 이었다.


역주
역주1 吳充 : 1021~1080. 宋나라 建州 蒲城 사람으로, 자는 沖卿이다. 仁宗 때에 벼슬을 시작하여 신종때까지 관직에 있어 同中書門下平章事에까지 이르렀다. 王安石과 姻戚 관계였으나 왕안석의 變法에는 반대하였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