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宗皇帝諱는 曙니 濮安懿王允讓第十三子요 母曰仙遊縣君任氏라 四歲에 仁宗養於內러니 寶元初에 豫王生하니 乃歸濮邸라 帝天性篤孝하고 好讀書하야 不爲燕嬉褻慢하고 服御儉素如儒者라
每以朝服見敎授 曰 師也라 敢弗爲禮아하더라 時吳王宮敎吳充이 進宗室六箴하니 仁宗付宗正한대 帝書之屛風以自戒하니라
景祐三年에 賜名宗實하고 嘉祐中에 宰相韓琦請建儲한대 仁宗曰 宗子已有賢知可付者하니 卿等其勿憂하라
七年八月에 立爲皇子하고 改今名하니 帝聞詔하고 稱疾益堅辭러니 八年仁宗崩하니 帝嗣皇帝位하다
영종황제의 휘는 서曙이니, 복안의왕濮安懿王 조윤양趙允讓의 열셋 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선유현군仙遊縣君 임씨任氏이다. 4세에 인종仁宗이 대내에서 길렀는데 보원寶元 초에 예왕豫王이 태어나자 복안의왕의 사저私邸로 돌아갔다. 영종은 천성이 매우 효성스럽고 독서를 좋아하여 연회를 열어 즐기거나 경박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사용하는 물건은 검소하여 유자儒者와 같았다.
매일
조복朝服 차림으로
교수敎授를 보고서 이르기를, “스승인데 감히 예를 갖추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때
오왕吳王의
궁교宮敎 이 〈
종실륙잠宗室六箴〉을 올리니 인종이
종정宗正에게 내렸었는데, 영종이 병풍에 써서 스스로 경계하였다.
송영종宋英宗
경우景祐 3년(1036)에 종실宗實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가우연간嘉祐年間에 재상 한기韓琦가 건저建儲를 세우기를 청하자 인종이 이르기를, “종자宗子 중이 이미 어질고 지혜로워 맡길 만한 사람이 있으니 경들은 근심하지 말라.” 하였다.
이때 영종이 복왕濮王의 상중에 있었으므로 황태자皇太子를 사양하는 주문奏文을 네 번이나 아뢰고서야 비로소 삼년상을 끝까지 마치는 것을 허락받았다.
가우 7년(1062) 8월에 황자皇子로 세우고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改名하였다. 영종이 조서를 듣고 병을 핑계 대고 더욱 굳게 거절하였는데, 가우 8년(1063)에 인종이 붕어하자 영종이 황제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