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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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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47
○帝嘗詔戒將帥曰 朕惟將帥之弊 每在蔽功而忌能하고 專己而自用이라 故下有沈抑之嘆하고 而上無勝算之助하니 殊不知兼收衆善하고 不揜其勞하야 使智者獻其謀하고 勇者盡其力이라 迨夫成效 則皆主帥之功也이라
昔趙奢解閼與之圍할새 始令軍中有諫者死러니 及許歷進北山之策而奢許諾하야 卒敗秦師하고 奢爲封君하야 與廉頗同位하니 果何害焉 卿當以奢爲法하야 毋蹈往弊하라 已嘗面諭此意하고 故玆親札하니
宜體至懷하라하고 仍刊石給賜諸將하다


25-1-47
효종이 일찍이 조서를 내려 장수將帥에게 경계하기를, “이 생각건대, 장수將帥의 폐단은 늘 남의 을 가리고 남의 재능을 시기하며,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여 데에 있다. 그러므로 아래로는 침체되었다는 한탄이 있고 위로는 승산勝算에 도움이 없으니, 이는 자못 중선衆善을 겸하여 받아들이고 그 을 가리지 않아서 지자智者로 하여금 그 모책謀策을 바치게 하고 용자勇者로 하여금 그 힘을 다하게 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을 이루게 되면 모두 주수主帥이 되고 만다.
옛날 처음에는 군중軍中에 명령을 내려 간언諫言하는 자가 있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하였다가 허력許歷북산北山의 계책을 올리자 조사는 이를 허락하여 마침내 나라 군대를 패배시켰고, 조사는 이 공으로 에 봉해져서 와 지위가 같아졌으니, 간언諫言을 받아들인 것이 과연 무슨 해로움이 되었던가.
경은 마땅히 조사를 본보기로 삼아 지난날의 폐단을 답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미 이런 뜻으로 면유面諭한 적이 있었고 짐짓 이에 친서親書를 내리니 짐의 지극한 생각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하고, 이에 돌에 새겨 여러 장수들에게 내려주었다.


역주
역주1 자기……행동하는 : ‘自用’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행한다는 의미로, 孔子가 “어리석으면서 자기 의견을 쓰기 좋아하고, 지위가 낮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기를 좋아하고, 지금 세상에 태어나서 옛 도를 행하려 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재앙이 그 몸에 미칠 것이다.[愚而好自用 賤而好自專 生乎今之世 反古之道 如此者 災及其身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中庸章句≫ 제28장)
역주2 趙奢가……때 : 趙奢는 戰國時代 趙 惠文王 때의 名將이다. 당시 秦나라가 韓나라를 치기 위해 진군하여 閼與에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혜문왕이 趙奢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閼與를 탈환하도록 하자 趙奢는 어여에서 백 리쯤 떨어진 곳에 성채의 보루를 증축하면서 진군하지 않고 맞섰다. 이때 조사는 부하인 許歷의 건의에 따라 요충지인 北山의 정상을 점령하고 진나라 군대를 대파하여 어여의 포위를 풀게 하였다.(≪史記≫ 권81 〈廉頗藺相如列傳〉)
역주3 廉頗 : 전국시대 趙나라의 명장으로, 80을 넘긴 나이에도 전투를 치르며 건재하여 노익장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藺相如와 刎頸之交를 맺어 조나라를 지켰으며, 그 공으로 趙 孝成王이 尉文이라는 읍의 땅을 내리고 信平君에 봉하였고, B.C. 251년에 平原君이 사망하면서 공석이던 相国 대행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悼襄王이 즉위하여 장군직에서 파면되어 지금의 河南省 開封市의 서북쪽 지역인 大梁으로 망명하였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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