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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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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15
○嘗謂秘書監移刺子敬等曰 昔唐虞之時 未有華飾하고 漢惟孝文 務爲純儉이라 朕於宮室 惟恐過度하야 其或興修이면 卽損宮人歲費하야 以充之어니와 今亦不復營建矣
如宴飮之事 近惟太子生日 及歲元飮酒하고 往者亦止上元中秋 飮之호되 亦未嘗至醉 至於佛法하얀 尤所未信이라 梁武帝 爲同泰寺奴하며 遼道宗 以民戶 賜僧寺하고 復加以三公之官하니 其惑深矣라하고
遂詔戶工兩部하야 自今宮中之飾 勿用黃金하라하다


27-1-15
일찍이 비서감秘書監 등에게 이르기를, “옛날 요순시대堯舜時代에는 화려한 장식이 있지 않았고, 나라에서는 오직 효문제孝文帝만이 순박하고 검소하게 하는 데 힘을 썼다. 짐은 궁실宮室에 있어서 오직 정도에 지나칠까 염려하여 혹 공역工役을 일으키거나 수리할 일이 있으면 궁인宮人들의 세비歲費를 줄여 충당하였거니와, 지금은 또한 다시 궁전을 짓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김세종金世宗김세종金世宗
연회를 벌여 먹고 마시는 일 같은 경우 근래에는 오직 태자太子의 생일과 새해 원단元旦에만 술을 마셨고, 과거에도 정월 대보름과 중추中秋에만 술을 마시되 또한 일찍이 취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았다. 불교의 교리에 이르러서는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민호民戶를 절에 하사하고 다시 승려에게 삼공三公의 관직을 더해주었으니, 그 미혹됨이 깊은 것이다.” 하였다.
마침내 호부戶部공부工部에 조서를 내려 “지금부터는 궁중의 장식에 황금을 사용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역주
역주1 移刺子敬 : 1110~1181. 契丹 사람으로 자는 同文이다. 讀書好學하여 金 熙宗 때 ≪遼史≫를 편수하고 그 공으로 同知遼州事에 제수되었으며, 世宗 때 簽書樞密院事가 되었다.
역주2 梁 武帝는……되었으며 : 南北朝時代 梁 武帝 蕭衍이 불교를 篤信하여 수백 권의 佛書를 짓고 佛經을 강론하며 無遮大會를 여는가 하면, 同泰寺에서 舍身과 贖身 공양을 한다면서 정사를 돌보지 않고 수많은 재화를 낭비하다가 끝내 侯景의 난을 당해 굶어 죽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무제는 죽을 때 입이 써서 꿀물을 찾았으나 끝내 얻어먹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南史≫ 권7 〈梁武帝本紀〉)
역주3 遼 道宗 : 1032~1101. 遼나라 제8대 임금 耶律洪基를 말한다. 興宗의 장남으로 어리석고 무능하였다고 한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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