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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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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
○皇祐元年正月庚戌 太傅致仕鄧國公張士遜卒하니 車駕臨奠하고
翌日謂輔臣曰 昨有言庚戌 是朕本命이니 不宜臨喪이라호되 朕以師臣之舊 故不避호라 文彦博曰 唐太宗 辰日 哭張公하니 陛下過之遠矣로소이다


23-1-22
황우皇祐 원년(1049) 정월 경술일에 태부太傅치사致仕등국공鄧國公 장사손張士遜이 죽자 인종이 문상하여 을 올렸다.
다음 날 보신輔臣에게 이르기를, “어제 어떤 사람이 경술庚戌은 짐의 이므로 상가喪家에 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하였으나 짐은 사신師臣의 옛 정 때문에 피하지 않았다.” 하니, 이 아뢰기를, “ 태종太宗진일辰日의 상에 곡을 하였으니, 폐하께서는 그보다 훨씬 뛰어나십니다.” 하였다.


역주
역주1 本命 : 태어난 날과 干支가 서로 같은 날로, 庚戌日이 바로 本命日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2 文彦博 : 1006~1097. 北宋의 명재상으로, 자는 寬夫이다. 仁宗 5년(1027) 진사에 급제한 이후 仁宗, 英宗, 神宗, 哲宗 등 네 명의 황제를 섬기면서 50년 동안 장수와 재상으로 치적을 이루었다. 밖으로는 王則의 반란을 진압하는 등 四夷에 이름을 떨쳤고, 안으로는 영종을 옹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신종 때 王安石의 新法에 반대하여 쫓겨났다가, 철종 때 舊法黨이 부활하자 司馬光의 추천으로 다시 등용되었다. 潞國公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忠烈이다.(≪宋史≫ 권313 〈文彦博列傳〉)
역주3 張公謹 : 584~632. 唐나라 繁水 사람으로, 자는 弘愼이다. 처음엔 王世充 밑에서 벼슬하다가 당 태종 李世民의 막하로 귀순하고부터 공을 세워 代州都督이 되었고, 정치의 득실에 관한 많은 계책을 올리고 돌궐의 공략에 공이 많아 鄒國公에 봉해졌다. 그가 죽었을 때 태종이 곡을 하려고 하자 有司가 “陰陽書에 의하면 辰자가 든 날에는 哭泣을 해서는 안 되고, 또 풍속에서 꺼리는 것입니다.” 하니, 태종이 이르기를, “君臣의 의리는 父子와 같다. 情이 衷心에서 나오는데 어찌 辰日을 피하겠는가.” 하고, 마침내 곡을 하였다.(≪舊唐書≫ 권68 〈張公謹列傳〉)
역주4 (瑾)[謹] : 저본에는 ‘瑾’으로 되어 있으나 ≪舊唐書≫ 〈張公謹列傳〉에 의거하여 ‘謹’으로 바로잡았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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