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月에 詗知楊州無備하고 命韓令坤等將兵襲之호되 戒以毋得殘民하고 其李氏陵寢을 遣人與李氏人共守護之하다
唐主以兵屢敗로 懼亡하야 乃遣翰林院學士鍾謨와 文理院學士李德明하야 奉表稱臣來請平하고 獻御服湯藥及金器五千兩과 繒錦二千匹과 犒軍牛五百頭와 酒二千斛하다
比至壽州城下하야 謨德明素辨口라 世宗知其欲遊說하고 盛陳甲兵而見之 曰 爾主自謂唐室苗裔라하니 宜知禮義異於他國이어늘 與朕止隔一水하야 未甞遣一介修好하고 惟泛海通契丹하야 捨華事夷하니 禮義安在오
且汝欲說我令罷兵邪아 我非六國愚主니 豈汝口舌所能移리오 可歸語汝主하야 亟來見朕하야 再拜謝過則無事矣어니와 不然이면 朕欲觀金陵城하야 借府庫以勞軍하노라
2월에
양주楊州에 대비가 없다는 것을 염탐하여 알고서
등에게 명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습격하게 하면서, 백성들을 해치지 말게 하도록 경계하고,
에 대해 사람을 보내 이씨의 사람과 함께 수호하게 하였다.
남당주南唐主(
이경李景)가 군대가 자주 패하자 망할까 두려워하여
한림원翰林院 학사學士 와
문리원文理院 학사學士 을 보내
표문表文을 받들어 올리고 신하로 자칭하며 와서 평정해주기를 청하고,
어복御服과
탕약湯藥과
금기金器 5,000
냥兩과 비단 2,000필과 군대를 먹일 소 500
두頭와 술 2,000
곡斛을 바쳤다.
수주성壽州城 아래에 이르렀을 때, 종모와 이덕명이 평소 말을 잘하였기 때문에 세종은 그들이 유세하려는 것을 알고서 갑병甲兵을 성대하게 도열시켜 보게 하고 이르기를, “너희 임금이 스스로 당唐나라 왕실의 후예라고 하니 예의를 아는 것이 다른 나라와 달라야 하는데 짐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면서도 사신을 보내 수호修好한 적이 없고 바다를 건너 거란과 교통하여 중국을 버리고 이적夷狄을 섬기니 예의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너희들이 나를 설득하여 전쟁을 중지하게 하려고 하느냐. 나는 6국의 어리석은 임금이 아니니, 어찌 너희들의 언변으로 나의 뜻을 바꿀 수 있겠는가. 돌아가 너희 임금에게 말하여 속히 와서 짐을 보고 재배再拜하고 사과한다면 무사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짐은 금릉성金陵城을 구경하고 그대들 나라의 부고府庫를 빌려서 군사들을 위로하려고 하노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