疇始病에 帝謂胡宿曰 卿可遣子弟往問之하라 及病革에 又勅內侍挾太醫診視하고
及還에 以不起聞하니 帝嗟悼久之하고 卽欲臨奠이라가 以命官祈雨致齋로 故翌日乃出하야 賜白金三千兩하고 贈兵部尙書謚忠簡하고
疇妻梅氏方娠하니 帝命其家曰 卽生男女에 悉以聞하라 及生女子也에 又命及其適人하야 以其壻名聞하고
他日謂輔臣曰 王疇可惜이라 朕於兩府初得此人而遽爾淪喪하니 豈國之不幸邪아
치평治平 2년(1065) 2월에
추밀부사樞密副使 예부시랑禮部侍郞 가 죽었다.
왕주가 처음 병에 걸렸을 때 영종이
에게 이르기를, “경은 자제를 보내서 병문안하라.” 하고, 병이 위독해지자 또
내시內侍에게 명하여
태의太醫를 데리고 가서 진찰하게 하였다.
내시가 돌아와서 죽었다고 보고하니 영종이 오랫동안 비통해하고 즉시 친히 문상하려다가 명관命官으로 기우제祈雨祭에 치제致祭하는 때라서 다음 날 조문가서 백금白金 3,000냥을 하사하고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증직贈職하고, 시호諡號를 충간忠簡으로 내렸다.
왕주의 처 매씨梅氏가 임신중이었는데 영종이 그 집에 명하기를 “아들을 낳든 딸을 낳든 모두 아뢰라.” 하였으며, 왕주의 처가 딸을 낳자 또 그녀가 시집갈 때 사위 이름을 아뢰라고 하였다.
훗날
보신輔臣에게 이르기를, “왕주가 애석하다. 짐이
에서 처음 이 사람을 얻었는데 갑자기 죽었으니 어찌 나라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