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戊는 雍己之弟니 太戊立에 伊陟이 爲相이러니 亳有祥桑穀이 共生于朝하야 一暮에 大拱이어늘 太戊懼하야 問伊陟한대
伊陟曰 臣聞妖不勝德이라하니 帝之政이 其有闕歟신저
太戊於是에 修先王之政하며 明養老之禮하며 早朝晏退하고 問疾弔喪하야 三日에 而桑枯死하니라
三年에 遠方重譯而至者 七十六國이라 商道復興하야 號稱中宗하니라
周公이 作無逸之書曰 昔在殷王中宗하사 嚴恭寅畏하사 天命自度하시며 治民祗懼하사 不敢荒寧하시니 肆中宗之享國이 七十有五年이라하니라
4-3-1 태무는
의 아우이니, 태무가 즉위하여
이척伊陟이 재상이 되었는데,
박亳에
상상祥桑과
상곡祥穀이 조정의 뜰에 함께 생겨나서 하루 저녁에 크기가 한 아름이 되자 태무가 두려워하여 이척에게 대책을 물었다.
德滅祥桑
이척이 대답하기를, “신은 듣건대 요물妖物은 덕을 이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제帝의 정사에 잘못된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태무가 이에 선왕의 정사를 정비하고 노인을 봉양하는 예를 밝히며, 아침 일찍 조회하고 밤늦게 퇴청하며, 병든 자를 문안하고 상을 당한 자를 위로하니 3일 만에 상상祥桑이 말라 죽었다.
3년이 지나자 먼 지역에 있는 나라들 중에 몇 번의 통역을 거쳐서 조회 온 나라가 76개국이었다. 상商나라의 도가 부흥하여 묘호廟號를 중종中宗이라고 하였다.
주공周公이 〈
이라는 글을 지었는데, “옛날
은殷나라 왕 중종이 엄숙하고 공손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천명天命으로 스스로 다스리며, 백성을 다스림에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게으르고 안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종이 왕위를 누린 것이 75년이었습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