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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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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29
○十六年이라 金主與親王宰執從官으로 從容論古今興廢事하며 曰 經籍之興 其來久矣 垂敎後世 無不盡善이라 今之學者 旣能誦之하고 必須行之 苟不能行이면 誦之何益이리오
女直舊風 最爲純直하야 雖不知書 然其祭天地敬親戚尊耆老接賓客信朋友 禮意欵曲하고 皆出自然하니 其善 與古書所載無異 汝輩當習學之하야 舊風不可忘也니라


27-1-29
대정大定 16년(1176)에 세종이 친왕親王재집宰執종관從官과 함께 느긋하게 고금의 흥망성쇠에 대한 일을 담론하며 이르기를, “경서經書의 출현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으니, 후세에 가르침을 드리운 것이 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지금 배우는 사람들은 능히 외우고 나서 반드시 실행해야 할 것이니, 진실로 실행하지 못한다면 경서를 외운들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여직女直(여진女眞)의 옛 풍속은 가장 순후純厚하고 박직樸直하여,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고 친척을 공경하며 기로耆老을 존중하고 빈객을 접대하며 벗에게 믿음이 있는 것은 예의禮意가 곡진하고 모두 자연스러운 천성에서 나왔으니, 그 함이 고서古書에 기재된 내용과 다름이 없다. 너희들은 마땅히 익히고 배워서 옛 풍속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비록……못했지만 : 女眞은 12세기 초 金나라를 세울 때까지도 문자를 갖지 못했다. 건국 초에는 임시로 契丹文字로 실제적 수요에 응하다가 마침내 遼나라의 예를 본받아 스스로의 문자를 창제하기에 이르렀다. 금 태조 天輔 3년(1119)에 完顔希尹이 태조의 명에 의해 한문의 楷字를 본뜨고 거란문자에 의거하여 여진문자를 지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여진대자이다. 그 후 熙宗 天眷 1년(1138)에 희종 스스로 또 하나의 여진 문자를 만들어 皇統 5년(1145)에 실제로 사용케 하였으니 이것이 女眞小字이다. 이 여진소자는 금이 멸망한 뒤에도 얼마 동안 사용되어 明나라에 낸 그들의 表文도 이 문자로 되어 있었으나, 점차 사용이 위축되어 16세기말에는 드디어 失傳되었다. 그 후 淸나라를 건설한 후에 몽골문자를 차용하여 그들의 언어를 표기하게 되었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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