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帝又論及君臣相遇之難曰 如陸贄之於唐德宗에 可謂不遇나 朕嘗覽其奏議하고 喜其忠直이 次第見於施行하노라하니
龔茂良曰 陸贄不遇德宗이어늘 今陛下深喜其書하사 欲推行之하시니 是亦遇也이로소이다하다
帝又嘗言 用人에 不可分別黨與하고 止論其人賢否如何니 如唐之牛李는 其黨相攻四十年不解하니 皆緣主聽不明하야 所以至此라
文宗乃言 去河北賊易호되 去朝中朋黨難이라하니 朕常笑之하노니 爲人主者但公是公非니 何緣有黨이리오하다
又曰 朝廷所行事或是或非면 自有公議라 近來士大夫好唱爲淸議之說하니 此語一出이면 切恐相師成風하야 便以趨事赴功者爲猥俗하고 以矯激沽譽者爲淸高하야 駸駸不已라
如東漢激成黨錮之風이 殆皆由此라 深害治體니 豈可不痛爲之戒리오 卿等은 可書諸紳하라하다
효종이 또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만나기 어려운 점에 대해
논급論及하며 이르기를, “예컨대
는
당唐 에 있어서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만난 경우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짐朕은 일찍이 그의
주의奏議를 보고 그 충성스럽고 강직함이 글에 차례대로 시행된 것을 기뻐하였다.” 하니,
공무량이 말하기를, “육지는 덕종에 있어서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만난 경우가 아니었지만 지금 폐하陛下께서 그의 글을 매우 기뻐하시어 미루어 행하고자 하시니, 이는 또한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만난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하였다.
효종이 또 일찍이 이르기를, “사람을 등용할 때는
당여黨與를 분별해서는 안 되고 다만 그 사람의
현부賢否가 어떠한지를 논해야 한다. 예컨대
당唐나라의
는 그
당여黨與가 40년간 서로 공박하면서 화해하지 않았으니, 모두 군주의 귀가 밝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문종文宗이 말하기를
하였으니, 짐은 항상 그 말을 비웃었다. 군주가 된 사람은 다만
시비是非를 공정하게 해야 할 뿐이니, 그렇게 하면 어떻게 붕당이 생길 수 있겠는가.” 하였다.
또 이르기를, “조정朝廷에서 행하는 일이 어떤 때는 옳고 어떤 때는 그르면 자연히 공의公議가 생기는 것이다. 근래 사대부士大夫들은 소리 높여 청의淸議의 설說을 주장하기 좋아하니, 이런 말이 한 번 나오면 서로 본받아 풍속을 이루어서 문득 일에 달려가 공업功業을 이루는 사람을 저속하다 여기고 과격하게 이야기하며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을 청고淸高하다 여겨서, 이런 풍조가 급속히 진행되어 그치지 않을까 매우 걱정스럽다.
예컨대
동한시대東漢時代에
가 격발되어 이루어진 것 등이 거의 모두 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풍조는
치국治國의 요체에 매우 해가 되니, 어찌 통렬하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들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