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幾에 帝不豫하야 飮藥弗瘳하니 及疾篤에 引太宰西陽王羕司徒導及尙書令卞壼將軍郗鑑庾亮陸曄丹陽尹溫嶠하야 竝受遺詔輔太子하고 詔曰
三恪二王은 世代之所重이요 興滅繼絶은 政道之所先이니라
又宗室哲王有功勳於大晉受命之際者와 佐命功臣碩德名賢이 三祖所與共維大業하야 咸開라
方嶽征鎭과 刺史將守는 皆朕扞城으로 推轂於外하니 雖事有內外나 其致一也라
故不有行者면 誰扞牧圉이리오 譬若唇齒하야 表裏相資하니 宜戮力一心하야 若合符契하여 思美焉之美하야 以緝事爲期하라
百辟卿士가 其總己以聽於冢宰하야 保佑沖幼하고 弘濟艱難하야 永令祖宗之靈으로 寧於九天之上이면 則朕沒于地下나 無恨黃泉호리라
帝崩에 葬武平陵하니 在位三年이요 享年二十七이러라
13-3-6 얼마 지나지 않아 명제의 몸이 편찮아서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병이 위독해졌을 때 태재太宰 서양왕西陽王 사마양司馬羕과 사도司徒 왕도王導 및 상서령尙書令 변곤卞壼, 장군將軍 치감郗鑑․유량庾亮․육엽陸曄, 단양윤丹陽尹 온교溫嶠를 불러 함께 유조遺詔를 받아 태자太子를 보좌하게 하고, 다음과 같이 조서를 내렸다.
“
과
은 세상에서 대대로 소중하게 여기는 바이고, 멸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세대를 계승하는 것은
정사政事의 도리로 볼 때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또
대진大晉이
명命을 받을 때
공훈功勳이 있는
종실宗室의
명철明哲한
왕王과
좌명공신佐命功臣 및
석덕碩德과
명현名賢이
가 부여한 바
대업大業을
부지扶持하여 함께
국조國祚를 열었다.
그리고
과
및
자사刺史와
장수將守는 모두
짐朕의 나라를 지키는 장수로 밖에서
비록 일에는 안과 밖의 구분이 있지만 그 이치는 한가지이다.
그러므로
가 없으면 누가 변방을 지킬 수 있겠는가. 비유하자면 입술과 이빨의 관계와 같아서 겉과 속에서 서로 도움이 되는 것이니, 마땅히 한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부절을 합치듯이 하여 더욱더 그 미덕을 생각하여 일을 계승하는 것으로 기약을 삼아야 할 것이다.
백벽百辟과 경사卿士들이 자기 직책을 총괄하여 총재冢宰에게 명을 들어서 어린 황제를 보우保佑하고 크게 간난艱難을 구제하여 영원히 조종祖宗의 영령으로 하여금 구천九天의 위에서 편안하게 한다면, 짐朕은 지하에 묻히더라도 황천黃泉에서 여한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명제가 붕어崩御하자 무평릉武平陵에 장사 지냈다. 재위在位 기간이 3년이었고 향년享年이 27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