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是歲甲申에 上年十七이라 連遭三喪하고 又値歲歉한대 與仲兄으로 極力營葬事하고 遂歷游光固汝潁諸州하니 凡三年이라
時에 泗州盜起하야 列郡騷動어늘 辛卯夏五月에 汝潁兵起하니 壬辰春二月에 定遠人郭子興孫德崖等起兵하야 自稱元帥하고 攻拔濠州하야 據其城守之라
上念無所逃難
하야 不獲已乃以閏三月甲戌朔
抵濠城
하니 入門
에 子興見上狀貌奇偉異常人
하고 遂留置左右
하야 甚見親愛
한대
凡有攻討에 卽命以往이면 往輒勝하니 子興由是로 兵益盛이라
是冬에 元將賈魯가 與月哥察兒로 圍濠城한대 城中極力拒守라
癸巳夏五月에 元兵解圍去에 城中乏糧하야 人艱食하니 上以鹽易米於懷遠하야 歸贍子興家하다
濠城은 自元兵退로 軍士多死傷한대 上乃歸鄕里하야 募兵得七百餘人以還하니 子興喜하야 以上爲鎭撫라
是時에 子興等이 馭下無道라 所部多暴橫한대 上觀其所爲하고 恐禍及己하야 乃以七百人으로 屬他將하고 而獨與徐達等二十四人으로 南去略定遠하야 得壯士三千人이라
後七日
에 率之而東
하야 夜襲元
橫澗山
한대 黎明
에 入其營
하니 棄軍遁去
하고 降其民兵男女七萬
이라
得精壯二萬
하야 悉加訓練
한대 上喩之曰 爾衆
이 初非不多
나 一
爲吾所有
는 何也
오 蓋將無紀律
하고 士不素練故爾
라 今練習爾等者
는 欲令知紀律也
니 宜共戮力
하야 以建功業
이라하니 衆皆羅拜曰 唯公所命
이라
於是에 率之하야 南略滁陽한대 道遇定遠人李善長來謁이어늘 上與語悅之하야 留置幕下하고 俾掌書記하야 遂與俱攻滁陽下之하다
이보다 앞선 갑신년(1344)은 태조의 나이 17세였다. 그때 태조는 연달아
을 당하고 다시 흉년을 만났는데,
중형仲兄과 함께 힘을 다해
장사葬事를 지내고 마침내
$
당시
사주泗州에서 도적이 봉기하여
열군列郡에
소동騷動이 일어났는데, 신묘년(1351) 여름 5월에 여주와 영주에서 군사가 일어나자 임진년(1352) 봄 2월에
정원定遠 사람
과
손덕애孫德崖 등이 병사를 일으켜 스스로
원수元帥라 이른 뒤에
호주濠州를 공격하여 점령하고
호주성濠州城에 웅거하여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 태조는 난리를 피할 곳이 없다고 생각하여 부득이 윤3월 갑술일 아침에 호주성濠州城으로 갔다. 태조가 문으로 들어갔을 때 곽자흥은 태조의 씩씩한 모습이 보통 사람과 달리 특이한 것을 보고는 마침내 곁에 머물러두고 매우 친애親愛하였다.
그 후 무릇
공격攻擊과
토벌討伐이 있을 때마다 출전하도록 명하면 가서 번번이 승리를 거두었으니, 곽자흥은 이로부터 병력이 더욱 강성하게 되었다.
섬국공陝國公 곽자흥郭子興
이해 겨울에 원元나라 장수 가로賈魯가 월가찰아月哥察兒와 함께 호주성을 포위하였는데, 태조는 성안에서 힘을 다해 항거하며 성을 지켰다.
계사년(1353) 여름 5월에 원나라 군사가 포위를 풀고 떠나갔을 때 성안에 양식이 부족하여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자, 태조는 회원懷遠에서 소금으로 쌀을 바꾸어 돌아와 곽자흥의 근거지(호주성)를 구제하였다.
호주성은 원나라 군사가 물러간 뒤로 군사들이 많이 죽거나 다쳤는데, 태조가 이에 향리鄕里로 돌아가 병사를 보집하여 700여 명을 얻어 돌아오니 곽자흥이 기뻐하여 태조를 진무鎭撫로 삼았다.
이때 곽자흥 등은 아랫사람을 거느림에
도道가 없었으므로 소속
부部에 횡포를 자행한 것이 많았다. 태조는 그들이 하는 짓을 보고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염려하여 700명의 군사를 다른 장수에게 맡기고, 홀로
등 24인과 함께 남쪽으로 가서
정원定遠을 공략하여
장사壯士 3,000명을 얻었다.
중산왕中山王 서달徐達
7일 후에 그들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서 밤에 횡간산橫澗山에서 원나라 장수 장지원張知院을 기습하였는데, 새벽에 그 군영軍營에 들어가 보니 장지원張知院은 군사를 버리고 달아나고 그 백성과 군사 남녀 7만 명이 항복하였다.
이에 정예
장병壯兵 2만을 얻어 모두 훈련을 시켰는데, 당시 태조가 그들을 깨우치기를, “그대들 군중이 처음에 많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아침에 나의 소유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대개 장수는
기율紀律이 없고 군졸은 평소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대들을 익숙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은
기율紀律을 알게 하려는 것이니, 의당 함께 힘을 다하여
공업功業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하니, 군사들이 모두 열을 지어 절하며 말하기를, “오직 공이 명하는 대로 할 것입니다.” 하였다.
이선장李善長
이에 그들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저양滁陽을 공략하였다. 당시 도중에
정원定遠 사람
이 와서 배알하였는데, 태조가 함께 이야기해보고는 기뻐하여
막하幕下에 머물러두어
서기書記를 관장하게 하고 마침내 함께 저양을 공격하여 함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