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歷代君鑑(2)

역대군감(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역대군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9-1-7
○丙申三月 上進兵集慶路한대 元帥康茂才以城降하니
上悉召吏民父老하야 諭之曰 元失其政 所在紛擾하고 兵戈竝起하야 生民塗炭이라 汝等處危城之中하야 朝夕惴惴하야 不能自保 吾率衆至此하니 爲民除亂耳
汝宜各安職業하야 毋懷疑懼하라 賢人君子有能相從立功業者 吾禮用之 居官者 愼毋暴橫하야 以殃吾民하라
舊政有不便者어든 吾爲汝除之하리라하니 於是 城中軍民皆喜悅하야 更相慶慰 乃改集慶路爲應天府하다
上旣定金陵 欲發兵取鎭江이라가 慮諸將不能禁戢士卒하야 爲民患가하야 明日 召諸將戒之曰 吾自起兵으로 未嘗妄殺이라
今汝等將兵 當體吾心하고 戒戢士卒하야 城下之日 毋焚掠하고 毋殺戮이니 有犯令者어든 處以軍法하고 縱之者 罰無赦하리라하니 諸將皆頓首曰 謹受命이라하다
徐達等進兵攻鎭江하야 克之한대 號令嚴肅하야 城中晏然하야 民不知有兵이라


29-1-7
병신년(1356) 3월에 태조가 집경로集慶路로 진격하였는데, 나라 장수 을 바치고 항복하였다.
태조가 〈성안으로 들어가〉 이민吏民부로父老를 모두 불러놓고 효유하기를, “원나라가 정사政事의 도리를 잃음에 도처에서 소요騷擾가 발생하고 병란이 아울러 일어나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 그대들이 위태로운 성안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두려워하여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이곳으로 온 것이니, 이는 백성을 위해 난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마땅히 각각 자신의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며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도록 하라. 〈이 가운데〉 서로 도와가며 공업功業을 이룰 만한 현인賢人 군자君子가 있으면 내가 예를 갖춰 등용할 것이니, 관직에 있는 사람은 삼가 직무에 종사하여 횡포를 부리며 내 백성들을 해치지 말도록 하라.
그리고 예전의 정사政事 가운데 온당치 못한 부분이 있으면 내가 그대들을 위해 없앨 것이다.” 하니, 이에 성안의 군민軍民들이 모두 기뻐하여 서로 간에 경하하고 위로하였다. 이어 집경로를 응천부應天府로 고쳤다.
태조는 금릉金陵을 평정한 뒤에 출병하여 진강鎭江을 취하려 하다가 여러 장수들이 사졸士卒을 단속하지 못하여 백성들에게 근심을 끼칠까 염려하여 다음날 장수들을 불러 경계하기를, “나는 기병起兵한 이후 함부로 사람을 죽인 적이 없었다.
이제 그대들은 병사를 거느림에 마땅히 나의 마음을 잘 알고 사졸들을 단속하여 을 점령하는 날 방화와 약탈 및 살육을 저지르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명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군법軍法으로 다스릴 것이고 방관하는 자도 용서하지 않고 처벌할 것이다.” 하니, 여러 장수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대답하기를, “삼가 명을 받듭니다.” 하였다.
그렇게 한 뒤에 서달徐達 등이 군사를 진격하여 진강을 공격하여 함락하였는데, 호령號令엄숙嚴肅하여 성안의 백성들이 전쟁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편안하였다.


역주
역주1 康茂才 : 1313~1370. 蘄縣 사람으로, 자는 壽卿이다. 元나라에서 淮西宣慰使와 都元帥를 지내다가, 명 태조 주원장이 集慶에서 승리하자 부대를 이끌고 투항하여 秦淮翼水軍元帥가 되어 龍灣을 지켰다. 이후 주원장을 따라 명나라 판도를 정하는 중요한 전투에서 많은 戰功을 세웠다. 사후에 蘄國公으로 봉해졌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