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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3)

역대군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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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20
○五年正月 直隷及浙江諸郡軍民子弟 私披剃爲僧하야 赴京冒請度牒者 千八百餘人이라
禮部以聞한대 上怒甚曰 皇考之制 民年四十以上 始聽出家어늘 今犯禁若此하니 是不知有朝廷矣로다 命悉付兵部하야 編軍籍하야 發戍遼東甘肅하라
又曰 朕欽承舊制하야 一不敢忽호되 下人尙縱恣如此하니 何況後來리오 此不可宥 且此輩皆民螟螣이니 不可蕃育이니라


32-1-20
영락永樂 5년(1407) 정월에 절강浙江 여러 군민軍民의 자제들이 사사로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경사京師에 와서 함부로 도첩度牒을 청한 자가 1800여 명이었다.
예부禮部가 아뢰니 태종이 몹시 노하여 이르기를, “황고皇考( 태조太祖)의 제도에 백성은 40세 이상이 되어야 비로소 출가出家를 들어주게 되어 있는데, 지금 이처럼 금령을 범하니, 이는 조정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행위이다.” 하고, 모두 병부兵部에 내려서 군적軍籍에 편입시켜 요동遼東감숙甘肅의 국경을 수비하는 군사로 삼으라고 명하였다.
또 이르기를, “짐이 옛 제도를 공경히 계승하여 한 가지도 감히 소홀히 하지 않았는데도 아랫사람이 방자하게 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후세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는 용서할 수 없다. 또 이자들은 모두 백성을 좀먹는 자들이니 백성으로 기를 수 없다.” 하였다.


역주
역주1 直隷 : 직할지를 의미한다. 明나라의 행정구역으로 京師에 속하는 주변 지역을 가리킨다. 南京의 주변을 直隷로 하다가 成祖 때에 北京으로 천도하면서 북경 주변을 北直隷, 남경 주변을 南直隷로 불렀다. ≪明史≫ 제40권 〈地理志〉에 “明나라 말까지 직예로 삼은 곳이 두 곳이니, 京師와 南京이다.[終明之世 爲直隷者二 曰京師 曰南京]”라고 하였다.

역대군감(3)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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